窓_ 87

제자와 만나다

내가 스물다섯 살 때, 그는 열여덟 살이었다. 나를 아직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그는, 한 아이의 아빠이자, 한 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것도 나와 같은 동네의 한 교회 목사다. 교회는 힘겹다. 어렵고 고달픈 교회를 선택하여 섬기는 그의 깊은 속내는 예전 그대로였다. 그는 열여덟 살 때도 아이들의 리더였다. 내성적인 성격에 말도 조근조근, 그러나 논리적이고 곧은 언어를 가진 아이, 그때 그대로였다. 그 깊고 단단한 속내는, 그를 리더의 자리로 이끌었다. 식사와 차를 나누며, 우리의 오랜 그리움을 정겹게 다독였다. 멘토가 되어달라는 그에게, 친구는 되어주겠다고 했다. 그가 나한테 독서와 글쓰기 훈련을 받고 싶다고 했으나, 그저 너의 친구가 되겠다고 했다. 하여 같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한 달에..

窓_ 2013.01.24

부끄러운 얘기

부끄러운 얘기다. 오늘 "교회 2.0" 워크숍에 갔다가 IVP의 용희 간사를 '우연히' 만났다. 여러 얘기를 했고 여러 그리움과 속상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퇴사하고 처음이다, 이런 얘기. 그와 함께 수련원을 내려와 홍대 옛 사무실, 나의 일터이기도 했던 서점에 잠시 들렀다. 낯선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고, 갑작스런 편안함에 놀라기도 했다. 편안하다니, 나의 가슴이. 퇴사한 이후 홍대역 부근에는 가지 않았다. 밥 먹자는 옛 동료의 청도 여러 이유를 들어 다음으로 미뤘다. 페이스북에 옛 동료의 글이 나의 '뉴스피드'에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래도 가끔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그네들의 이야기는 애써 피했다.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 그랬다. 10년 가까이 일한 이곳에 대한 나의 마음은 마치, 오래 사귀었으나 ..

窓_ 2013.01.21

그들의 기억력이 좋은 이유

너머서교회 아이들이 홀트교회의 생활자(여기 장애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다)들과 예배를 드린다. 두 달에 한 번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두 사람 이상씩 인사를 나누고 이름을 물어보며 교제한다. 다시 만날 때까지, 그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숙제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남아 앞으로의 희망에 대한 피드백을 나눈다. 홀트교회를 담당하는 전도사님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았다. "여러분은 금방 잊어버리겠지만, 여기 생활자들은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기억력이 좋습니다." 그들의 기억력이 좋은 이유, 어렴풋이 알 것 같다.

窓_ 2013.01.20

페이스북 단상_2013/1/15

1. 비와 구름의 요정 비의 요정은 폭신폭신한 구름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여 일을 하러 가요. "오늘은 땅이 촉촉해지도록 비를 내려야지." 구름에는 수도꼭지가 있어요. 비의 요정이 그 수도꼭지를 열면 땅으로 주룩주룩 빗줄기가 쏟아지지요. 아빠: 예지야, 그럼 비의 요정이 눈도 내려주는 걸까?예지: 음... 아빠, 아니에요. 눈의 요정이 따로 있을 거에요. 그리고 눈의 요정은 구름을 조금씩 조금씩 떼어 땅에다 뿌리는 거에요. 겨울이 되면 땅이 너무 추우니까요. 눈으로 덮어 주어야 해요. 2. 아바서원 유감 이 책을 통해(

窓_ 2013.01.16

페이스북 단상_2013/1/10

_명동 청어람에서 오랜 동료 양미 만나러 가는 길에서간만에 출판계 이야기를 수다한 언어로 토해냈다. 글로 쓰는 것과 말로 풀어놓는 것과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인격적 만남이 전제된 한껏 고양된 감성과 감정의 발현 때문일거다. 간만에 나의 눈빛도 반짝이지 않았을까? 밥벌이도 중요하지만, 가슴 뛰는 즐거움 없이 살아낼 수 있겠는가? 그런 질문을 안고 다음 약속을 따라 길을 나선다. _아침, 서울 가는 지하철 안에서예지와 함께, 아내와 함께 나들이하던 때와 달리 홀로 지하철을 타고 사울로 향하는 마음이 의외로 편안하다. 혼자서 가는 서울, 거의 한 달 만이다. 한 달 전만 해도 마음이 쓸쓸하고 아팠는데, 오늘은 살짝 들뜬 마음에 찾고 싶은 사람과 공간들을 헤아려도 본다. 그렇게 시간은 애써 나의 가슴을 어루만..

窓_ 2013.01.11

들불처럼

지난 12월 19일 이후, 팟케스트를 듣지 않다가 조금 전, 이털남 252회 "이털남 올해의 인물" 편을 들었다. 진행자인 김종배 씨는 대선 직후, 이분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고 한다. 모든 좌절감 가운데 절정의 자리엔 이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바로 김종익 KB한마음 전 대표와 장진수 전 주무관이다. 김종익 씨와 그의 가족들은 대선 개표 방송을 보며 다음날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단다. 몇 개의 재판이 진행 중이고, 5년 간의 실업 상태로 재정 상황도 좋지 못하다. 갑상선 암 진단도 받았단다. 정부의 불법 사찰 이후, 그는 참으로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을 거다. 그 모진 세월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방송을 들으며 무엇보다 허망한 것은, 사람들의 망각이다.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을 너무나 쉽게 잊어가는..

窓_ 2013.01.10

다우리에게 배운다

송강호 박사님의 책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에도 정다우리 님의 사진이 두 장 들어가 있다(아래 사진). 활동가들과 대치한 경찰들의 모습, 경찰들에 고착/진압당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담겼다. '진달래산천' 조성봉 감독을 통해 그의 사진을 받았다. 감독님은 다우리 님의 사진에 대해 "그가 얼마가 가까이 얼마나 깊이 다가가 기록해 내는지... 그의 프레임엔 그의 눈물과 열정과 진심이 오롯이 담겨있다."라고 쓴다. 나는 어찌할 바 모를 부끄럼에 가슴이 서늘하다. 다우리. 이제 그의 나이 스물이다. "열여덟에 구럼비에 와서 지금 스물이 되었다.", "인권, 평화, 정치 사회, 민주주의, 노동, 문화예술이 스스로의 수업이었다.", "그런 그가 카메라를 던져버렸다. 빛을 담고자 했던 그가 스스로 빛이 되고자..

窓_ 2013.01.08

너머서교회_선교 보고

너머서교회 선교 보고 및 선교 헌금 작정의 시간 PPT(2012년 12월 30일)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창세기의 창조 사건에서부터 요한계시록의 새 창조까지,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일관되게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 모든 곳, 모든 영역에서 정의와 평화를 회복시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는 지상 명령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너머서교회는 이를 위해, (1)지역 사회 섬김, (2)교회 개혁 운동, (3)해외 선교 등의 세 가지 영역에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너머서교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아직 부족합니다. 첫째, 선교비 지출의 부족입니다. 실질적인 헌신이 부족합니다. 정관 6장 22조에는 외부 사용액이 전체 예산의 ..

窓_ 2012.12.31

송강호 박사님과 조정래 사모님과의 만남

송강호 박사님, 조정래 사모님과 함께했습니다. 전부터 식사 초대를 하고 싶어하시던 사모님의 청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어왔습니다. 출판사를 나온 이후, 제가 저자랑 계속 만나는 것이 어떨지 조금 망설여졌던 까닭입니다. 그렇게 미루었던 만남이 오늘 있었습니다. 특히 사모님과 아내는 기뻐했습니다. 사모님께선 정성스럽게 만드신 선물과 편지를 준비해오셨고, 우린 예지가 만든 카드와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사모님의 편지는 아내의 마음을 감동케 했습니다. "험한 세상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들"은 저희가 드려야 할 이야기였지요. 다음엔 편하게 만나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이제 박사님의 헤어스타일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혜영 자매, 반가웠어요. 아이들이 ..

窓_ 2012.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