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채널예스_ 6

불가해한 위안의 책

이소영 선생님, 간혹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세상이란 거대한 타자에 호기롭게 맞서던 소년 시절부터 부와 가난과 계급의 층위를 헤아리며 한낮의 분노로 휘몰아치던 청년 언저리를 지나, 어지간한 모순은 세상의 이치로 수렴하는 지경에 이른 지금까지, 저는 언제나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과 한결같은 사랑을 주는 이가 곁에 있었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고, 그 어쩔 수 없음으로 인해 저는 늘 죄인 같았습니다. 선생님의 책은 그런 저를 가만히 응시하는 듯했습니다. ‘네가 바로 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 “내가 너야. 그래서 나는 알아본단다.”(《별것 아닌 선의》, 6~7쪽) 선생님의 책을 쉽게 읽을 수 없었어요. ‘프롤로그’에 적혀 있는 저 문장 때문에, 이 책이..

편집자의 무모한 희망에 관하여

〈채널예스〉 틈입하는 편집자_ 첫 번째 편지편집자의 무모한 희망에 관하여 수현, “세상과 출판산업의 비관과 모순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랑하고 열망하여, 편집자란 업業과 편집자의 삶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이들을 초대합니다.” 새로운 지평이라니, 이런. 다시 꺼내 읽어 보니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불과 한 문장에서 비관과 모순과 절망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지평의 가능성으로 마무리되는, 한껏 경도된 선동에도 불구하고 ‘틈입하는 편집자’라는 제목의 이 강좌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4주간의 모임이 끝나고 또 다른 이들과도 비슷한 주제로 두어 차례 더 진행했으니까요. 당신과의 우정은 그때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후 한 출판사에 입사했다고,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 당신이 만든 첫 번째 책을 들고 ..

사랑은 패배하지 않는다

2015년 10월 1일, 저자들에게 쓴 편지 + 책을 만드는 ‘업業’을 ‘명命’으로 받들던 시절이 있었어요. 책을 만드는 것이나 소개하는 것에 필사적이던 시절, 그러나 언제부턴가 '책이 과연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란 회의에 직면하였고,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책이란 ‘명’이 하나의 ‘업’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에서 일종의 비약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밥벌이로 전락한 책은, 그제서야 유의미한 물질의 가치로 발화한다는 것. 하나의 책에 그로 인해 희생당한 나무들의 생명값을 정확히 계산하여 묻게 되고, 하나의 책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과의 삶에 대한 재화의 근원으로서 합당한지를 고민하게 하고, 하나의 책이 굳센 확신이 아니라 숱한 회의懷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

낭비되고 낭비하여 아름다운, 유혹으로의 초대

낭비되고 낭비하여 아름다운, 유혹으로의 초대 《유혹의 학교》(이서희 지음┃한겨레출판 펴냄┃2016년 5월) 손쉬운 사랑은 없다. 다른 존재를 향한 열망이 발화되는 것은 순간이나 그 존재에 닿을 때까지는 고독의 시간을 앓아야 한다(고독이 소중하다면 그것은 존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존재의 심연은 견고하므로, 더욱이 다른 존재라면, 내 고독의 보상을 그에게 쉬이 기대할 수 없다. 천운이 도래하여 열망하던 존재와 연인이 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섣불리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며, 지금부터의 시간들로 치열하게 증명되어야 하니까. 세상에 손쉬운 사랑은 없으나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사랑도 없다. 포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떤 큰 물살로도 그대의 사랑을 끄거나..

‘책 읽는 아이’보다 ‘책 읽는 부모’가 먼저입니다

★ 엄지혜 기자님과 서면 인터뷰한 원고입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봅니다”라는 주제였고, 기사는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0025 ‘책 읽는 아이’보다 ‘책 읽는 부모’가 먼저입니다 1. 평소 아이들에게 책 추천을 해주는 편인가요? 어떻게 독서활동을 함께 하고 계신가요? 첫째 아이 예지는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열 살 딸이고, 막내 예서는 아직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일곱 살 아들입니다. 아이들의 독서는 아이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아내가 거의 전담하고 있어요. 다만 저와 아내는 아이들 양육에 대한 목표는 정확히 일치해요. 저희는 가능한 한 아이들이 공부를 즐겁게 하길 바라죠.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대신 아이들이 동네도서관을 마음껏..

[스크랩] 띠지를 바라보는 출판인들의 생각

와의 인터뷰입니다. 저도 참여했네요. 엄지혜 기자님, 고맙습니다.http://ch.yes24.com/Article/View/28931?Ccode=000_008_001 책 띠지, 당신은 버리십니까? 모으십니까?띠지를 바라보는 출판인들의 생각 출판사는 고민한다. “이번 책에 띠지 해? 말아?” 대개 출판 마케터들은 “띠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 30만 원 안팎의 금액으로 책을 홍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글 | 엄지혜 사진 | 장호연 독자의 입장에서 ‘띠지’는 정말 ‘걸리적거리는’ 존재다. 책을 한 번에 부드럽게 넘기고 싶은데 마치 방해자인 것처럼, “너 이 책, 이렇게 읽어야 해! 이게 중요해”라고 훈수를 두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런데 간혹, 책의 한 부분처럼 읽히는 띠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