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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아이’보다 ‘책 읽는 부모’가 먼저입니다

Soli_ 2016. 1. 30. 20:50

★<채널예스> 엄지혜 기자님과 서면 인터뷰한 원고입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봅니다”라는 주제였고, 기사는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0025






‘책 읽는 아이’보다 ‘책 읽는 부모’가 먼저입니다








1. 평소 아이들에게 책 추천을 해주는 편인가요? 어떻게 독서활동을 함께 하고 계신가요?


첫째 아이 예지는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열 살 딸이고, 막내 예서는 아직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일곱 살 아들입니다. 아이들의 독서는 아이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있는 아내가 거의 전담하고 있어요. 다만 저와 아내는 아이들 양육에 대한 목표는 정확히 일치해요. 저희는 가능한 한 아이들이 공부를 즐겁게 하길 바라죠.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대신 아이들이 동네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해요. 집에는 언제나 대출받은 책들이 구비되어 있는데,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과 엄마가 추천하는 책들로 구성되죠. 아이들이 책에서 길을 찾기를, 또한 언젠가 책에서 길을 잃기를 바라죠. 


엄마는 시간을 정해 아이들과 함께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요. 조금 독특한 방법일 수 있는데요. 책의 전부나 일부를 읽고 아이들의 상상을 덧붙여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가령 책의 첫 장면을 보여주고 나머지 이야기를 상상하여 지은 후 책과 비교해보거나, 책을 다 읽고 뒷이야기를 덧붙이는 거죠. 그리고 한 아이씩 발표를 하고 느낀점을 나눕니다. 퇴근하여 집에 가면 아이들이 만든 이야기가 거실 벽에 전시되어 있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거실 벽을 가득 채우면, 그 이야기들은 아이들 각자의 파일로 묶어요. 그렇게 아이들이 지은 이야기들이 지금은 몇 권 분량의 두툼한 파일로 묶여 있어요. 독서와 글쓰기, 논리와 상상력은 함께 성장하는 것 같아요. 





2. 각 아이들의 독서 성향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열 살 예지는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습니다. 놀러 갈 때도 책을 챙기죠. 그래서 가끔 자제시키기도 해요(특히 차 안에선 읽지 말라고 하죠. 하늘을, 풍경을, 사람을 보라고 해요). 장르도 가리지 않아요. 동화, 시, 지식, 역사 등등. ≪책과 노니는 집≫(이영서 글, 김동성 그림, 문학동네어린이)를 좋아하고, 최근엔 메리 폽 어즈번의 ≪마법의 시간여행≫(55권, 비룡소) 시리즈를 즐겁게 읽었어요. 장래희망은 과학자, 간호사, 선생님, 화가 등 변화무쌍하지만, 일관된 희망 하나는 작가가 되는 거예요. 무슨 직업을 갖든지 나중에 꼭 글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해요.


일곱 살 예서는 누나만큼 많이 읽지는 않지만, 훨씬 세밀하게 보죠. 책을 읽어주면서도 아빠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림 작가의 세밀한 묘사를 발견하고 유심히 관찰하고 기억해내요. 상상력이 뛰어나죠. 한 권의 그림책에서 예서의 상상력은 시작되고 확장되죠. 요즘은 ≪건축가 로베르토≫(니나 레이든, 주니어파랑새)를 거듭 읽고 있어요. 예서는 읽은 책이 마음에 들면 그 책을 꼭 껴안고 같이 자요.



3. 아이들이 부모에게 책 추천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나요?


아이들이 책 추천을 해달라고 요청하기보단, 새롭게 관심이 가는 것들에 대해 묻죠. 꽃과 나무와 새들의 이름을 묻기도 하고, 겨울에 내리는 눈이나 하늘의 구름, 한밤의 별들이 궁금해지는 거죠. 친구와 싸우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거나 슬프고 화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저희는 아이들에게 소개해줄 책을 찾아요. 식물도감을 같이 읽기도 하고, 별자리와 그리스 신화, 구름사전이나 날씨의 원리를 알려주는 책을 빌려다 주죠. 내 자신과 친구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책을 함께 읽고 얘기하죠. 대화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필요를 말할 때, 저희는 그 필요를 채워주는 책을 찾고,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어야겠다’고 다짐하죠. 저희도 아이들의 책,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많이 배운답니다.   



4. 청소년기(초등, 중등) 아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에게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길벗어린이), ≪몽실언니≫(창비),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시공주니어), 김서령 작가가 번역한 루이스 M.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허밍버드), 미하엘 엔데의 ≪모모≫, 월간지 ≪고래가 그랬어≫를 추천하고 싶어요. 권정생의 책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자각을, ‘나’로부터 시작하여 ‘타자’에게로 확장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죠. C. S. 루이스의 이야기는 보편의 세계에서 아주 특별한 세계를 발견하도록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빨강머리 앤’과 ‘모모’는 ‘곁’을 지키는 이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기적’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선사합니다. ≪고래가 그랬어≫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행복한 생각’을 자라게 합니다. ‘이야기’와 ‘상상력’, ‘행복한 생각’은 아이들에게 자랄 때 큰 힘이 될 겁니다. 중학생이 되면 세계문학전집을 아이의 방에 넣어줄 겁니다. 이젠 스스로 자신의 책을 찾아야지요. 



5. 책 읽는 환경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인가요?


환경이 제일 중요합니다. 거실에 텔레비전을 없애서 ‘사방’에서 책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했어요. 아이들의 나이에 맞는 다양한 주제의 책들로 ‘항상’ 읽을 수 있도록 구비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선택하여 읽게끔 합니다(또는 선택하여 가져온 책을 읽어줍니다). 아이들에게 먼저 책이 발견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선택하고 책 읽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환경은 ‘책 읽는 부모’입니다. 부모들이 먼저 책을 읽어야 해요. 딸 예지는 언제나 엄마를 선망하죠. 아들 예서는 아빠를 유심히 관찰하죠. 부모가 책을 읽을 때, 아이들도 옆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요. 아이들은 아는 것 같아요. 부모가 무언가를 자신들에게 말할 때, 부모 스스로 그것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말이죠. 부모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진심을 말하는 건지 말이죠. 아이에게 독서가 중요하다고 말하려고 한다면, 부모 스스로 그것을 믿어야 해요. 



6. 독서교육에 혈안이 된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독서마저도 성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것은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성적이 지금까지의 결과라면, 독서는 지금부터의 가능성이죠. 장래희망이 대학 따위가 되는 건 너무 비극이에요. 저는 ‘독서’와 ‘교육’의 조합이 한 편으론 당연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는 우리 교육현실에 대한 노파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릇 독서는 교육 이전의 발견이고 경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지의 친구들이 종종 말하곤 해요. “난 책 읽는 게 제일 싫어.” 독서가 부모의 강요나 선생님의 숙제가 될 때, 아이들이 그 즐거움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죠. 책 읽기의 즐거움을 경험한다면 시키지 않아도 읽을 겁니다. ‘읽혀야 하는 책’보다 ‘읽고 싶은 책’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부모들은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책,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책, 그러면서도 좋은 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죠. 우리 아이들의 호기심이 책을 만나 상상력으로 발현된다면, 아이들의 상처나 고민이 책을 만나 위로와 희망에 이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부모들이 먼저, 자녀양육서가 아닌 ‘자신들의 책’을 읽는 것이 먼저입니다.





7. 지금까지 작업한 책 중에, 내 아이들이 커서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다면 무엇이며, 이유는?


세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첫 번째는 ≪공부란 무엇인가≫(이원석, 책담)으로, ‘존재를 다지고 삶을 벼리고 우정을 도모하는 공부의 길’에 관한 책입니다. 두 번째는 ≪행복을 철학하다≫(프레데릭 르누아르, 책담)로 ‘인생의 사계절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에 관한 책입니다. 세 번째는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송강호, IVP)로, 저희 아이들이 ‘평화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 올해 편집장님의 독서 계획이 있다면 짧게 부탁 드립니다.


보통은 딱히 독서 목표나 계획을 잡지는 않는데요. 올해는 개인적인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세웠어요. 책을 사는 만큼 책을 읽지 않는다는 자책, 책을 읽는 만큼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반성이 반영된 목표입니다. “느리고 깊게, 거듭 읽기”, 그리고 오랜 숙원인 ≪니체 전집≫(21권, 책세상) 완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