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87

해명되지 않는 울음의 이유를 묻는 대신

어스름한 저녁 빗줄기에 우울이 내려앉을 때, 섬세하지 못한 언어가 육체의 피곤을 핑계로 당신의 마음을 할퀼 때, 누군가 무심히 던졌던 말이 가슴의 체증으로 박힐 때, 미처 처리하지 못하거나 혹은 이루지 못한 일들로 얽힌 불면의 한밤을 서성일 때… 우리는 사소한 것에 마음이 무너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오랫동안 피로와 통증, 오해와 억울함, 포기와 좌절, 상처와 슬픔이 퇴적되고 적루된 삶의 울음과도 같을 것이다. 늘 괜찮다고 말했던 남자도, 꿋꿋하게 버티던 여자도, 투명에 가까운 마음을 가졌을 것 같던 열 살 아이라고 할지라도, 문득 작고 소소한 일상의 균열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린다. 당신 때문에 우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당혹스럽다. 그런 울음을 마주할 때, 차마 울지 못해 더욱 견고한..

窓_ 2016.04.21

세월호 2주기

안부를 물었다. "잇달아 발생하는 사건들의 끊임없는 사슬로 과거와 현재는 연결된다"는 체호프의 문장으로 위로하며, 그 문장 앞에서 울었던 소설 속 '한 어미와 딸'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었다. 그러나 위로받은 건 이번에도 나였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안부를 물었다. 2년째 오늘은 4월 16일이다. _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서 세월호 분향소 1주기, 2주기에 접은 종이배. 우리 집 거실.

窓_ 2016.04.16

새해 다짐

조그만 유리병에 한 해의 소망을 담는다. 오늘 새해 첫 가족회의에선 유리병을 열어 작년의 쪽지를 읽어보았다. 예지는 꽤 많은 목표를 이루었고 우리는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새해의 소망과 목표를 적어 담는다. 나의 새해 다짐은 다음과 같다. 1. 연결이 아닌 관계를 지향한다. 2. 소비를 지양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한다. 3. 글을 쓴다. 4. 생각의힘을 더 좋은 출판사로 만든다. 5. 니체 전집 완독. 6. 다시 읽는다. 더 깊이 읽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긴다. 7. 아이들의 언어 공부를 돕는다. 8. 새로운 요리법을 12개 이상 익힌다. 9. 사진을 찍는다. 10. 다시 뛴다. 2016년 1월 1일, 새해 다짐.

窓_ 2016.01.03

이직移職

책담, 안녕_2015년 6월 12일 책담을 만들던 시간들과 책담이란 이름으로 책을 만들던 시간들에게, 이곳에서 만들었던 책들과 만들고 싶었으나 만들지 못한 책들에게, 한 권의 책을 마감한 직후 습관처럼 카페 트위드를 찾아 듣던 비틀즈의 노래들에게,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어 홀로 호사를 누리던 제인버거의 손맛들과 종종 황홀경에 빠뜨리던 망원시장 떡볶기집들의 유혹들과 시장 한 모퉁이 2000원짜리 칼국수의 후한 인심들에게, 가장 먼저 봄을 알리던 성미산의 꽃들과 내 가슴속 슬픔을 아우르던 한강변에 살던 조용한 바람들에게, 확신이 아닌 질문을 벼릴 수 있도록 보듬던 절두산과 양화진의 숭고한 죽음들에게, 지치고 외롭고 고달플 때 나를 위로하던 우정의 사람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전한다. 책담과 망원, 그들과 함께했던..

窓_ 2015.06.22

Y에게

Y에게, 무의식은 내 안에 깃든 타자의 흔적이고 타자를 향한 사랑을(또는 그 사랑이 유실된 흔적을) 탐구하는 것이 정신분석의 본령이라면, 가장 치열했던 사랑의 슬픔이 오히려 가장 무심하고도 심상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우리의 삶이 아닐까 생각하는 시간이었지, 내게는. 그리고, 그렇다면, 과연 무의식을 탐사하여 그것에 닿는 것은 가능할까, 다시 말해, 타자에게, 그 열렬한 사랑에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닿을 수 있을까 묻고 의심하는 시간이었지. 확신이나 불신의 확정적 단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만족해. 밤새 비바람이 창을 때리고 창밖에 번개에 번쩍했는데,예지가 무서워서 잠을 못자더라. 그래서 옆에 누워 소리와 빛의 간극을 헤아리기 시작했어. 번개가 치고, 하나, 둘, 셋...일곱, 우르르쾅쾅. 번개가 치고, 하나,..

窓_ 2015.04.03

집에 가는 길. 어제는 그런 꿈을 꾸었다. 길을 걷는데, 도무지 도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좌절이 아니었으며 어떤 환희였다. 끝없는 곡절과 리듬이 도상에 있었다. 몸은 따뜻했고 정신은 조금씩 더 맑았을 것이다. 끝을 상상할 수 없으므로 뛰지 않았다. 호흡이 조용히 흔들렸을 뿐이며, 그리하여 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아침이 왔다. 아쉬움. 그 아쉬움이 이 밤에 아득하고 집에 가는 길이 호젓하다.

窓_ 2014.01.24

강신주 유감 혹은 변호

"철학은 '독고다이' 상담으로, 심리학은 '쪽집게' 처방으로.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작년 연말, 강신주의 ≪다상담≫을, 그리고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를 살펴보다 페이스북에 남긴 단문이다. 비록 여러 자리에서 강신주나 김형경에 대한 날선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들에 대한 일면의 긍정적인 평가도 철회할 생각이 없다. 푸코는 “사고에 대한 사고의 비판 작업”을 통해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으로 철학을 정의하였다. 강신주는 현장에 조응하는 철학적 인문학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억압받는 군중의 욕망에 무능했던 숱한 철학자들과 달리, 그는 투쟁했으며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철학 Vs 철학≫을 위시한 숱한 저작들은 군더더기 없는 그 열매들이다(물론 인터뷰집이나 ≪다상담≫류의 강..

窓_ 2014.01.23

안해용 목사님 사임 예배 단상

안해용 목사님 사임 예배 단상_2013년 11월 24일_ 작별의 서사는 늘 애달프다. 아이들은 엄마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불안은 천진했으나, 아내의 슬픔을 쉬이 관조할 수 없는 나의 불안은 불온했다. 슬픔에도 수백 가지의 이유와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없어 체념했다. 쉬이 타자를 신뢰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있어 아내와 나는 닮았지만 그 이유는 사뭇 달랐다. 아내는 경험과 상처에 기인했고, 나는 이성적 판단이 앞섰다. 군중 속에서 아내는 두려움에 불편하다면, 나는 불편함을 두려워하는 편이다. 그런 까닭에 아내의 사람들은 소수였으나 그들에 대한 애달픔은 깊고 맑았고, 나의 사람들도 소수였으나 그들과의 관계도 늘 위태로운 경계 즈음에 존재했다. 3년 전 즈음, 너머..

窓_ 2013.11.25

페이스북 단상_2013/04/04-04/30

20130430 _오늘 을 읽었는데, 이들 매체 모두가 세르티양주의 을 다루었더군요. 저는 이 책이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몇 가지 치명적 단점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예스런 문장과 태도 속에 깃든 가부장적 독선, 둘째, 델리탕티슴이나 소설 등을 폄하한다는 것, 셋째, 공부하는 '삶', 그 삶의 자리가 모호하다는 점 등입니다. 세 번째는 약점이라기보단, 저의 아쉬움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덧붙인 책이 이계삼 선생님의 책입니다. '진짜 공부'는 어떠해야 하는지, 모름지기 '공부의 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니까요.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oli0211.tistory.com/423 _'복(있는사람의)집'에 가봤는데요, 감나무가 심겨진 아득한 봄날 같은..

窓_ 2013.10.27

'주경'이 쓴 내 소개 글

지난 주, 장신대 강의 갔다가 사회자께서 내 소개를 '주경'의 글로 대신하였다.몸둘 바 모를 정도로 난처하고 과분했던 찬사를, 이곳에 고이 간직하고자 옮겨놓는다. 실은, 자랑이다. 가끔 나에게 이런 저런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경우는 매우 고맙고, 또 어떤 경우엔 불쾌했다.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의외로 간단했다. 그쪽에서 '꼰대'처럼 굴면 이쪽에선 어김없이 불쾌했다. 김진형 간사님과 연이 닿은지도 어느새 햇수로 팔 년... 간사님은, 내가 아는 한 책을 가장 매력적으로 소개하는 분이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인상, 부드러운 목소리와 나긋나긋한 어조, 간결하고도 책의 핵심을 잡아내는 설명... 그야말로 책 소개의 달인이시다. (간사님 때문에 내 지갑이 얼마나 자주 맥없이 입..

窓_ 2013.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