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강신주 유감 혹은 변호

Soli_ 2014. 1. 23. 09:43

"철학은 '독고다이' 상담으로, 심리학은 '쪽집게' 처방으로.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작년 연말, 강신주의 다상담을, 그리고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를 살펴보다 페이스북에 남긴 단문이다. 비록 여러 자리에서 강신주나 김형경에 대한 날선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들에 대한 일면의 긍정적인 평가도 철회할 생각이 없다. 


푸코는 “사고에 대한 사고의 비판 작업”을 통해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으로 철학을 정의하였다. 강신주는 현장에 조응하는 철학적 인문학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억압받는 군중의 욕망에 무능했던 숱한 철학자들과 달리, 그는 투쟁했으며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철학 Vs 철학을 위시한 숱한 저작들은 군더더기 없는 그 열매들이다(물론 인터뷰집이나 다상담류의 강연집, 최근의 몇몇 칼럼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허나 무결한 글만 쓰는 작가도 있을까). 그의 현세적적 감각은 대중의 숨은 욕망을 이끌어냈고, 대중은 환호했다. 


물론 그에게 문제와 책임이 없지 않다. ‘노숙자 칼럼’뿐만 아니라, 수많은 상담 사례와 칼럼에 있어 그는 너무 단순한 논리로 결론에 도달한다. 대중의 욕망은 인내하지 않는다. 철학은 오랜 통념에 질문하고 도전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지난한 투쟁을 통해 본질에 닿아야 한다. 그의 철학은 본령에 닿지 못한 하나의 처방전에 그칠 때가 있다. 그가 좀더 숙고하고 성찰하고 진화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 당찬 결기는 추호도 타협하지 않길 바란다. 난 강신주에 대한 폭풍같은 환호도, 비판도 불편하다. 도리어 그를 소비하는 우리의 방식에 대한 성찰이 먼저 아닌가 싶다. 강신주라는 소중한 철학자를 이렇게 쉽게 잃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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