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87

"누가 오 팀장을 낭만적이라 하는가"

"기풍이란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습관이며 가치관이자 확신의 반영이다.""누가 오 팀장을 낭만적이라 하는가, 생존 자체를 원하는 사람이다." (이상, 130수)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요즘의 나를 부러워 한다. 여기저기 기고한 글이나 강의하는 것을 '활약'으로 평가하고, 그 엄중한 행위로 나의 존재감이 "돋보인다"고 칭찬한다. 거기다 '낭만적인 프리랜서'라고, 자신들의 샐러리맨 인생을 부러 대비시키며 '부럽다'고 한다. 그런 경우, 난 대체로 그저 웃으며 듣는(척 하는) 편이다.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의 현실은 비루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프리랜서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프리랜서를 계속 할지 고민하면서도, 나같이 홀로 버는 가장으로선 고민 그 자체가 사치인 것만 같다. 그래서..

窓_ 2013.05.26

기억의 편파성에 관한 변호

덧없이 흐르는 것 같지만, 시간은 분명한 잔해를 남긴다. 그리고 편파적으로 재구성하고 기록한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이라 부른다. 시간을 그저 '덧없다'고, 우리의 기억을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다. 따라서 망각을 핑계 삼는 비겁함을 포기하고, 모든 부당한 슬픔을 기록하며 나의 시간을 견디고 극복해야 한다.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용기의 핵심은 신중함"이므로.

窓_ 2013.05.25

아버지에 대한 기억 한 자락

아버지 추도예배를, 이번엔 천안 누나네 집에서 드렸다. 먼길 오가느라 몸은 지쳤는데, 가슴은 더욱 생생히 그날을 추억한다. 아니, 정신은 지쳤는데 몸이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79년 4월 3일, 아버지는 소천(召天)하셨다. 아버지는 암을 앓으셨고, 죽음 직전 예수를 영접하셨다고 한다. 그즈음 집에는 친척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어머니는 종종 소리 내어 우는 누나를 달래곤 하셨다. 난 아버지의 냄새가, 가래 끓는 소리로 탁하게 갈라진 낮은 목소리가 싫었다. 담배 냄새 절은 삼촌들이 얼굴을 부벼대는 것도 싫었다. 집앞 골목에서 세발 자전거를 타다 아버지의 죽음을 들었다. 난 뭔지 모를 해방감에 잠시 기뻤던 것 같다. 아, 무서운 아버지께 불려가 그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는구나, 저 친척들도 이제 우리집..

窓_ 2013.04.15

잔인한 봄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숱한 슬픔을 각오해야 하던 때가 있었단다. 단지 신앙한다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짓밟혔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교회는 슬픔의 사람들을 품고 지켰고 북돋았다. 복음은 교회 안에서 생명이 되고 불꽃이 되었다. 아득히 먼 옛날, 그런 때가 있었단다. 그러나 지금, 나의 기독교는, 슬픔의 사람들을 지키기는커녕, 그들을 도리어 억압하고 짓누른다. 기꺼이 어느 누군가를 모욕하고 차별할 수 있게 되었다. 주류의 종교는 기꺼이 그럴 만한 권력이 있으니까. 나의 기독교는 그렇게 나의 절망이 된다. 무엇으로 절망을 딛고, 다시 그 아득한 희망, 불꽃 같던 생명에 닿을 수 있을까. 묻고 또 묻는 잔인한 봄이다.

窓_ 2013.04.11

페이스북 단상_2013/03/20-04/03

2013/04/03 _우리집 모자간 평범한 대화. 엄마: 예서, 너 아저씨지?!예서: 아야, 나 빵꾸야! _어제 저녁의 행복에 대해 짧게 썼더니 많은 분들이 덧글과 메시지로, 문자로 물으신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보통 어떤 행복은 성취감과 동일시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떤 성취, 어떤 성공은 행복하다. 성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일 자체가 그렇기도 한다. 유시민도 하고 싶은 일을 밥벌이로 삼는 행복을 갈망한다고 했다. 마땅히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허나, 어떤 일이나 성취, 성공 같은 것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다. 사람과의 만남이다. 난 아내 순일을 만나 행복하다. 평생 지속가능한 유일한 행복일 것이다. 어제 저녁도 그러하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 그러했다. 어떤 만남은 그 자체로 나..

窓_ 2013.04.03

부활의 날, 도마의 길을 기억하다 (너머서교회, 130331)

★너머서교회는 부활절과 설립 5주년을 맞이하며 전교인인 함께 칸타타를 부르고, 각 순서를 맡아 예배를 섬겼는데 제가 맡은 것은 글을 써서 읽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부여된 주제는 "너머서가 나아갈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도마의 부활절을 묵상해보았습니다. 성서의 기록을 참조하였으나, 그 여백 속에 저의 상상력을 보탰습니다. 어쩌면 저는 도마와 비슷했습니다. 물론 아직은 '불멸에 이르지 못한 회의자, 도마'인 것도, 한편으론 동료 요한 사도를 부러워하는 도마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부활의 날, 도마의 길을 기억하다"-너머서가 나아갈 길- 열두 제자 가운데 '쌍둥이'라고도 불렸던 도마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갈릴리의 가난한 어부였던 아버지가, 그리고 제 자신이 못마땅했습니다. 학문을 익혀 부모와는 다른 삶을..

窓_ 2013.03.31

괴산을 가다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 즈음에 자리잡은, 문성희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한반도 남쪽의 배꼽' 괴산에 다녀왔다. 속리산 자락 밑에 미루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엔 50여 가구들이 패시브하우스를 짓고 살고 있다. 요리연구가이자 명상가인 문성희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괴산에 대한 여러 정보들, 미루마을의 한계, 그리고 인근 지역에 세워질 힐링센터에 대한 이야기들. 언론의 주목을 받은바 있는 미루마을(http://www.mirutown.com)은 아름다웠으나(특히 패시브하우스는 부럽다!), 처음의 의도 대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50여 가구 중 상주하여 이웃으로 지내는 가구는 현저히 적었으며, 마을의 어린이 도서관은 예쁘게 꾸며놓았으나 정작 이용하는 어린아이들이 없었..

窓_ 2013.03.07

홀트교회와 함께한 너머서 아이들

너머서교회 교회학교 아이들은 격월로 홀트교회를 방문합니다. 오늘이 올해 두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홀트교회 찬양단. 떠드는 교우들을 혼내기도 달래기도 하면서 인도합니다."너는 내 아들이라"라는 성가를 부르는데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저들의 마음이 부러웠습니다. 홀트교회를 섬기시는 전도사님. 저 자리가 참 힘겨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적어도 외롭지는 않으실 것 같았습니다. 가끔 방문하는 이들 때문이 아니라홀트교회 교우들의 사랑 때문에요. 잠시 한순간의 기도에도 소홀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설교하시는 안해용 목사님. 너머서교회에서 뵀을 때, 좀 피곤해 보이셨어요. 사순절 기간이라 그러신가 했지요. 그런데 홀트교회에서 설교하시는 모습은 참 행복해 보이셨어요. 홀트교회 성도들에겐 '아멘'이란 짧은 응답도 사치스럽습니..

窓_ 2013.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