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괴산을 가다

Soli_ 2013. 3. 7. 23:30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 즈음에 자리잡은, 문성희 선생님의 표현으로는 '한반도 남쪽의 배꼽' 괴산에 다녀왔다. 속리산 자락 밑에 미루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엔 50여 가구들이 패시브하우스를 짓고 살고 있다. 요리연구가이자 명상가인 문성희 선생님 댁을 방문하여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괴산에 대한 여러 정보들, 미루마을의 한계, 그리고 인근 지역에 세워질 힐링센터에 대한 이야기들. 


언론의 주목을 받은바 있는 미루마을(http://www.mirutown.com)은 아름다웠으나(특히 패시브하우스는 부럽다!), 처음의 의도 대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50여 가구 중 상주하여 이웃으로 지내는 가구는 현저히 적었으며, 마을의 어린이 도서관은 예쁘게 꾸며놓았으나 정작 이용하는 어린아이들이 없었다. 무언가, 그곳에 있는 집들이 하나의 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곳에 입주하기 위해선 상당한 재정이 필요했다. 우리 같이 전세집 사는 서민들에겐 허락되지 않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인근 마을과는 전혀 어울리는 않는 부촌처럼 보였다. 


미루마을에서 차로 10여 분 떨어진 곳에 또다른 작은마을이 있다. 이곳은 그냥 평범한 시골마을이다. 사실 우리의 목적지는 그곳이었다. 개발되지 않은 산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작은 분지에 작은마을이 있다.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아홉 분이 사시는 마을. 오늘 세 가정이 동행했는데, 그중 한 가정이 이곳에 땅을 사려고 한다. 400평 정도의 땅을 사서 개간하여 미루마을보다는 좀더 작은 패시브하우스를 지으려 한다(모두 세 가정이 1200여평을 구입할 예정이란다. 계획 대로 된다면 입주하는 세대는 좀더 될 것이다). 그 가정도 가진 재산이 별로 없어 전 재산을 투자해야 가능한 꿈이다. 그 꿈은, 주로 수도권에서 추진되는 교육 콘텐츠 중심의 마을이 아니라 소비에서 생산까지 공유하는 마을 공동체, 집단 이주로 자기들만의 마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마을에 들어가 서로를 돌보는 이웃 공동체를 꿈꾸는 것이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폐교가 있는데, 문성희 선생님이 그곳에 힐링센터를 세울 계획이란다. 


우리 가정은 사실 오늘 동행하며 그 꿈을 잠시 엿보았을 뿐이다. 마을엔 마트가 하나도 없고 근처엔 대형 쇼핑몰도 없다. 유치원은커녕 학교도 보이지 않는다. 괴산을 통틀어 고등학교는 하나뿐이다. 괴산군 관보를 보니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이곳에 살면, 무엇으로 먹고살지부터 걱정해야 할 것 같다. 어른신들 사이에서 온갖 마을의 궂은 일은 우리가 다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가슴이 뛰었다. '할머니들의 음기로 그득한 땅'에 아이들 소리가 들리고 마을이 바뀌는 모습을 상상한다. 미루마을만큼은 아니겠으나, 무언가 생산적인 에너지로 마을이 바뀌는 그림을 그려본다. 아이들은 좋은 유치원에 다닐 수 없을 것이고, 예지가 좋아하는 키즈카페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프로그램으로도 맛볼 수 없는 자연을 마음껏 누리며 충만한 생명과 벗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가능한 꿈일까. 잘 모르겠다. 현실적인 문제 앞에 여전히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나, 우리의 꿈은 이제 막 시작하였을 뿐이다. 오직 그것만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