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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의 다섯 번째 생일

아내는 온 몸이 아픕니다. 한의원에 갔더니, 혹시 아이 출산한 달이냐고 묻습니다. 엄마의 몸은 참으로 신비합니다. 출산의 고통을, 그 몸은 평생 기억하고 되새깁니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그리고 평생 가장 큰 고통으로 기억할 그 '순간'을 엄마의 마음은 소중히 간직합니다. 아내는, 아픈 몸으로 밤늦도록 예지에게 해줄 여러 먹거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지를 참으로 힘들게 낳았습니다. 혈소판 수치가 낮았던 아내는, 이틀 간의 진통 끝에 예지를 낳았고, 낳자마자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 시간 뒤에 간신히 깨어난 아내는 새벽까지 수혈을 받았습니다. 태명은 "지음"이었고, 이름은 "예지"로 지었습니다. 무지개 '예', 이르다 '지'. 예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언제나 되새기게 하는 아이이고, 오랜 힘..

霓至園_/rainbow_ 2012.04.24

양미를 보내며

양미의 송별회 때 제가 송사를 맡았습니다. 그때 썼던 편지입니다. 전 직장의 동료였던 양미는 그곳에서 15년을 넘게 일했습니다. 입사했을 땐 저의 팀장이었고, 제가 그녀의 팀장이었을 땐 저를 가장 가까이서 돕는 동료가 되었지요. 부서원이 늘어날 때마다 부서의 쓴소리는 늘 그녀의 몫이었고, 덕분에 전 '마음 좋은 부서장' 역할만 하면 되었지요. 그러면서도 유독 그녀에겐 싫은 소리를 제법 해야했던 시간들을 아프게 기억합니다. 그녀의 꿈은 그곳에서 정년 퇴직하는 것이었죠. 편지를 쓰며,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슬픔과 자책이 사무쳤습니다. 그리고 저도 곧 그곳을 떠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요.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저도 떠났습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만나 봐야겠어요. 2013/01/07 ..

窓_ 2012.04.13

더디게 간다

더디게 간다 서둘러 떠나 숨가쁜 걸음 끝에 도착했지만 정작 내 시선에 남은 것이 없어 허망할 때가 있다. 느릿느릿, 숨을 고르며 걷는 길에, 수많은 풍경이 담긴다. 사람들의 웃는 모습도 수백 개다. 목소리는 수천 개다. 골목길 모퉁이 조그만 채소 가게 아저씨의 표정도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아이는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것이다. 기억하는 만큼, 딱 그 만큼만 나의 세계다. 가슴에 남은 풍경만 추억이 된다. 수백 개의 표정과 목소리를 기억하는 이들만 나의 사람이 된다. 때로 우리 인생엔 느린 걸음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오늘도 쉽게 다다를 곳을, 더디게 간다.

窓_ 2012.01.31

지금껏, 나와 우리의 빈들에 '소리'가 필요했듯이

소리지(200호) 지금껏, 나와 우리의 빈들에 '소리'가 필요했듯이 IVP 김진형 간사|영업마케팅부 부장 ‘진리’에서 ‘기적’까지의 거리. 난 그 사이에 엄연한 ‘비약’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진리는 정의를 담보로 굳건히 존재하고 전진한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리에겐 지난한 ‘일상’이 있을 것이다. 정의를 움켜쥐고 진리를 지켜내려 발버둥치지만, 승리에 다다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이루어지고, 진리가 승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처럼 보인다. 오랜 기다림이 필요할게다. 소란스런 세상에서, 고된 하루를 버겁게 살아내는 이들에게, 기다림이란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난, 가끔 우리 삶에도 ‘기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비약’과 ‘일상’의 차..

기고_/etc_ 2012.01.10

서경식에서부터 헬렌 니어링까지

서경식에서부터 헬렌 니어링까지대학가 2011년 7월호 책 소개 책에서 길을 찾다. 그 길 위에서 내 자신을 만나다. _소년의 눈물 (서경식/ 돌베개) 민족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일본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는, 그리하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언어의 감옥” 속에 갇혀 살았던 재일 조선인 지식인 서경식 선생의 독서 비망록. 사실 우리도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저마다의 존재감을 상실한 채, ‘강요되어진 어떤 존재’로 자라간다. 그의 자의식, 세상과의 불화 혹은 저항, 위태로운 순응의 길, 위선과의 단호한 맞섬, 그리고 아픔의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그 길’ 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왜 그들은 망루에 올랐을까? _내가 살던 용산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외/보리) 살기 위해 ..

view_/책_ 2011.11.06

예서의 첫 번째 생일, 유아세례 받던 날

'무지개 아이' 예서에게 무지개 ‘예霓’, 글 ‘서書’. ‘예서’라 부른다. 아주 오랜 옛날,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물로 벌하신 후,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새롭게 맺으셨단다. 모든 불신앙과 절망, 공포, 죄악을 이겨내고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이들에게 곡진한 은혜를 허락하셨단다. 하나님은 늘 그러하시다. 늘 먼저 찾으셨지만 되레 버림받으셨고 외면받으시면서도 그분의 사랑은 우리를 끝내 품고야 만다. '무지개霓'는 홍수 심판 이후 주셨던 언약의 징표였단다. 그리고 모든 언약을 담아 기록된 '말씀書'을 주셨단다. 인생에 비바람이 몰아치거든 하늘을 묵상하렴. 무지개를 주실 것이다. 혹시 스스로에게 좌절하거나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온갖 힘겨움과 슬픔을 마주치게 된다면 '말씀'을 묵상하렴. 예서를 향한 하나..

霓至園_/rainbow_ 2011.05.01

김진형의 서재는 "예지가 살아갈 세상"이다 (대학가, 100621)

대학가 2010년 7-8월호 인터뷰 김진형의 서재는 "예지가 살아갈 세상"이다 김진형에게 서재는? 저에게 책은, 저의 꿈이 자라가는 터, 또는 길 같은 것이죠. 가난했던 십대엔 힘들 때 숨어버리는 도피처이기도 했고, 성공을 꿈꾸며 책을 무섭게 읽기도 하였고, 예수님을 영접했던 스무 살 무렵부턴, 저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고민하며 책을 읽었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슴에 무엇을 품고 살아야 하는가?”, “내 존재를 걸고 지켜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답하던 긴 여정, 저에게 책 읽기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서른 무렵, 큰 좌절에 빠졌을 때가 있었어요. 사람에 대한 회의, 오랫동안 꿈꿔왔던 계획의 좌절, 세상에 대한 깊은 절망 등. 참 힘겨웠던 시절, 잠시 책..

기고_/대학가_ 2010.06.21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 매혹 혹은 근원적 갈망

아마 "여행"과 관련된 서평을 써달라고 요청이 왔을 것입니다. 고민 없이 김연수와 제임스 휴스턴을 골랐습니다. 두 작가 모두 제가 흠모하는 이들이었죠. 그래서 글도 즐겁게 썼습니다. 다만, 원고를 받은 편집인이 제목이 좀 난해하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읽어보니, 내용도 좀 그렇네요. 보통, 마음이 많이 들어간 글이 종종 일반 독자들에겐 난해하게 읽힙니다. 독자를 위한 글이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한 글인 까닭이죠. 아무튼, 글을 썼던 당시엔 도통 바빠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유로운데 도리어 밥벌이에 대한 불안감으로 쉬이 떠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봅니다. 느닷없이, 여행을 떠나고픈 간절함에 잠못 이루는 새벽입니다. 2013/01/17 04:33 소리(2009년 12월호) ..

기고_/대학가_ 2009.11.16

[CTK] 인생의 멘토가 필요할 때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인터뷰(with 안혜원 기자) 김진형 (IVP 문서사역부) Q-1. 위의 책들이 생각만큼 많이 팔렸는지요.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북어워드 수상한 IVP의 책들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톰 라이트),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온다(브라이언 맥클라렌), 비유로 말하다(유진 피터슨),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톰 라이트), 톰 라이트와 함께하는 기독교여행(톰 라이트), 그 길을 걸으라(유진 피터슨), 이 책을 먹으라(유진 피터슨), 현실, 하나님의 세계(유진 피터슨), 그리스도인의 양심 선언(로날드 사이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 사랑하기(제임스 에머리 화이트), 복음주의의 기본 진리(존 스토트), 지적 설계(윌리엄 뎀스키) 사실 저희의..

기고_/CTK_ 200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