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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나와 우리의 빈들에 '소리'가 필요했듯이

Soli_ 2012. 1. 10. 04:52

소리지(200호)


지금껏, 나와 우리의 빈들에 '소리'가 필요했듯이



IVP 김진형 간사|영업마케팅부 부장


‘진리’에서 ‘기적’까지의 거리. 난 그 사이에 엄연한 ‘비약’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진리는 정의를 담보로 굳건히 존재하고 전진한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리에겐 지난한 ‘일상’이 있을 것이다. 정의를 움켜쥐고 진리를 지켜내려 발버둥치지만, 승리에 다다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이루어지고, 진리가 승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처럼 보인다. 오랜 기다림이 필요할게다. 소란스런 세상에서, 고된 하루를 버겁게 살아내는 이들에게, 기다림이란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난, 가끔 우리 삶에도 ‘기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비약’과 ‘일상’의 차이.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성서는 ‘비약’이 온전히 하나님의 몫임을 강조한다. 우리의 몫은 ‘일상’이다. 하늘을 품되, 땅에서 살아가는 일. 그 차이만큼이나, 우리의 일상은 고되고 외롭다. 그래서 난, 가끔,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을 ‘빈들’이라 부른다. 빈들에서의 일상은 제법 고단하다. 내가 분투하여 싸운 대상은 기껏 ‘밥벌이의 지겨움’일 따름이다. 그마저도 버거운 상대일뿐더러, 난 종종 진다. 그리고 좌절한다. 하여, 오늘 나의 빈들엔 ‘소리’가 필요하다. ‘소리’는 세례 요한의 시대에서부터, 함석헌 선생의 시대까지 줄곧 ‘빈들’ 곁에 있었다(함석헌 선생의 “나는 빈들에 외치는 소리”라는 시를 찾아 읽어보라). 나와 우리의 빈들도 그러하다. ‘소리’가 필요하다. 저마다 겪는 극한 고통의 순간에, 길고 긴 한숨 너머 아득한 고독의 자리에, ‘외치는 자의 소리’는 다양한 메시지로 던져진다.


‘소리’는 나의 빈들에서,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사별(死別)을 주제로 다뤘던 196호와 ‘소리가 만난 사람-이 사람, 김종호’ 편이 실렸던 199호는 어린 시절 감당해야 했던 아버지의 죽음과 가난의 문제, 그리고 결혼 후 첫째 아이를 유산했던 아픈 기억을 마주하게 하였고, 소리 197호에 실렸던 “엄마라는 자리”라는 글은 아내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었다. “상연정(常戀亭)에서”란 제목으로 연재되는 글은, 일상에서 내게 부족한 것은 ‘지식이 아닌 삶의 태도’임을(굳이 딱 짚어 말하면 위트와 관조적 삶의 여유?) 깨닫게 하고, 199호의 “화해의 직분과 화해의 말씀을 맡은 이들”이란 글은 나의 빈들을 넘어, 우리의 빈들에 그득한 온갖 슬픔과 싸우도록 권면하였다. 


지금껏, 나와 우리의 빈들에 소리가 필요했듯이, 앞으로도 그러할거다. 슬픈 세상 속에 남겨진 우리의 빈들은 앞으로도 계속 외로울 테니까. 그리고 우리에겐 비약이 아닌, 일상을 감내하며 살아내야 하는 소명이 있으니깐. 그러니, ‘소리’도 더욱 치열해졌으면 좋겠다. 성서의 본문에서 적용점을 친절히 풀어주는 ‘강해’ 수준에서 조금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성서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그 지난한 일상 속에 진리를 따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아직 기적이 이르지 못하였어도 괜찮다. 완전한 승리에 다다르지 못하여도 괜찮다. 빈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친구일 테니.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아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러니, ‘소리’가 ‘빈들’을 살아내는 또다른 벗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전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