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양미를 보내며

Soli_ 2012. 4. 13. 08:28


양미의 송별회 때 제가 송사를 맡았습니다. 그때 썼던 편지입니다. 

전 직장의 동료였던 양미는 그곳에서 15년을 넘게 일했습니다. 입사했을 땐 저의 팀장이었고, 제가 그녀의 팀장이었을 땐 저를 가장 가까이서 돕는 동료가 되었지요. 부서원이 늘어날 때마다 부서의 쓴소리는 늘 그녀의 몫이었고, 덕분에 전 '마음 좋은 부서장' 역할만 하면 되었지요. 그러면서도 유독 그녀에겐 싫은 소리를 제법 해야했던 시간들을 아프게 기억합니다. 

그녀의 꿈은 그곳에서 정년 퇴직하는 것이었죠

편지를 쓰며,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슬픔과 자책이 사무쳤습니다. 그리고 저도 곧 그곳을 떠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요. 결국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저도 떠났습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요. 만나 봐야겠어요.


2013/01/07







어느 철학자가 말하기를, 

“사랑은 자신의 영토를 내어줌으로, 자신의 영토를 지켜낸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늘 그렇게 타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줌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합니다. 

하여, 사랑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신을 가두지만, 

그럼에도 결국 세상을 충만하게 하는 역설의 가치를 던집니다.  


우리에게 사랑은, 사랑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던 단 한 사람은 “양미”였습니다. 

더불어 사는 모든 이들을 추스리고, 마음을 건네고, 다독이며 

상심한 가슴을 위로하는 일은 늘 그녀의 몫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양미”란 존재는, 우리에게 돋보이는 사랑, 가장 빛나는 사랑의 아포리즘이었습니다. 


그런 "양미"가 이제 우리를 떠난다고 합니다. 


2003년 10월 이후 지금껏, IVP에서 지냈던 시간은 사실 “양미”와 함께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삼십 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이가, “양미”입니다. 

아내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보았던 이가, “양미”였습니다.  

이곳을 떠나려 제법 굳은 결심을 하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다가온 이도 “양미”였습니다. 

내가 먼저 말해서가 아니라, 미처 말하기 전에 그가 나의 마음을 먼저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떠날 결심을 했을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이도 “양미”였고, 

결국 남기로 하였을 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양미”였습니다. 


그런 “양미”가 이제 우리를 떠난다고 합니다. 


한편, 그와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타고난 성실함은 늘 나를, 우리를 주눅들게 하였고, 그의 원칙은 우리를 늘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탁월함은 어떤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어떤 결과물이 아니라, 

어떤 가치에 도달하는 우리의 정직함과 성실함이라고 한다면, “양미”는 내게 가장 탁월한 동료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그를 잃고, 두고두고 아쉬워할 것입니다. 


“양미”의 속은 깊고 넓었으나, 강한 사람으로 보였으나, 실은 누구보다 여린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홀로 외로울 때가 많았고, 홀로 울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 그런 그를 옆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시간들을, 정말이지 너무 아프게 후회하고 자책합니다.


“양미” 없는 이곳에서, 지금부터의 시간은 시작부터 아득합니다. 

그러나, 이곳을 떠나 동료에서 친구로 사귈 수 있기에, 마냥 슬퍼하고 있진 않겠습니다. 

앞으로 더 깊고 따뜻하게, 애틋한 우정을 나누며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론, 우리가 “양미”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안녕, “양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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