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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언니

예지는 낯가림이 심한 아이였다. 엄마, 아빠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였고, 어딜 가도, 누구에게도 쉽게 다가서지 않았다. 그런 예지가 너머서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서가 태어나기 전, 예지가 네살 즈음 너머서교회에 처음 왔을 때, 교회 어른들과 언니들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그래도 예지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단, 이삭이 언니한테만은 예외였다. 이삭이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좀 남다른 아이였다. 키가 어지간한 어른들보다 컸고, 이삭이의 생각과 마음은 그보다도 더 크고, 넓고, 깊었다. 예지는 이삭이를 너무 잘 따랐고, 그 다음엔 안해용 목사님과 이명희 집사님(사모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목사님과 집사님은 이삭이의 부모님이자, 예지의 첫 번째 멘토이셨다(그분들도 ..

窓_ 2012.06.09

검사 결과

2012/5/21보듬어 용기를 북돋아주어도 될까 싶은데, 잔뜩 주눅들어 힘겨운 사람과 시선을 마주하여 모진 소리를, 정색하며 했다.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 그를 다독거리기보단, 되려 한껏 자극하는 편을 선택했다. 예지가 소변에 피가 묻어나온다. 소아과에 물었더니 산부인과로 가라하고, 산부인과에 갔더니 대학병원으로 가란다. 아내가 놀랬다. 아마, 겁많은 여섯 살 아이 예지는 더 무서웠을 것이다. 나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별것 아닐게다, 그럴 가능성이 훨씬 많을거다. 그래도, 놀랜 예지 마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예지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 내일 휴가를 냈다. 그래서 야근 중이다. 그런데, 잘 안 된다. 목표로 했던 것만큼 마치기 힘들 것 같다. 여행 다녀온 여파이기도 하고,..

霓至園_/rainbow_ 2012.06.05

그르니에의 섬

기껏, 이제 며칠 지났을 뿐인데, 제주도, 그리고 울릉도에서의 시간이 벌써부터 아득하다. 울등도에서의 둘째 날 아침, 나리분지를 거닐며 그르니에의 "섬"이, 그 책의 서문인 까뮈의 글이 생각이 났다. 집에 가면 다시 찾아 읽어야겠다고 수첩에 적었는데, 오늘 퇴근하기 직전에 그 메모를 기어이 기억해냈다. "태양과 밤과 바다...는 나의 신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향락의 신들이었다. 그들은 가득히 채워준 뒤에는 다 비워내는 신들이었다. 오직 그들과 더불어 있을 경우에 나는 향락 그 자체에 정신이 팔려 그들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내가 어느 날 그 무례한 마음을 버리고 나의 이 자연신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에게 신비와 성스러움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視線_ 2012.05.24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와이즈베리, 2012)

지난 주말부터 어제까지, 다시 샌델의 신작을 읽었다. (1) 좋은 책이다. (2) 그의 글쓰기 방식(혹은 강연)은 매혹적이다. 치열한 논증을 통한 도전과 어떤 잠정적 대안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가치'있다. 가치와 목적, 그 본질에 대한 그의 치열한 방어는 여러모로 귀감이 된다(한편 그가 시장 자본주의의 한계와 인간의 욕망의 문제를 충분히 극복해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3) 이 책과 더불어 꼽을 수 있는 책으로 짐 월리스의 가 있다. 논증은 못미치나, 당위와 치열함은 못지않다(근데 이 책을 보니, 짐 월리스의 책은 제목이 아쉽네. 샌델의 책, 제목과 부제가 좋다). (4) 샌델의 최고의 책은 라고 생각한다.

view_/책_ 2012.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