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76

Y에게 추천하는 2014년 2월 첫째 주 신간

Y에게, 언젠가 말했지만, 난 편집자보단 독자로서의 욕망이 훨씬 큰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10여 년 일한 출판사에서 나올 때, 다시는 출판사에서 일하지 않기를 각오했었지. 결국, 일년도 되기 전에 밥벌이의 당위에 굴복했지만 말야.(ㅠㅠ) 대신, 다시 책을 만들면서, 그 욕망의 순전함을 다짐하고 있어. 욕망의 순전함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좋은 책에 대한 갈망이 사유의 욕망이 아니라, 삶의 욕망이길 바라는 거지. 그럴 때, 많은 책에 대한 탐심을, 좋은 책에 대한 순정 아래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어. 다음은 2월 첫째 주(1/27-2/7), 너에게 추천하는 책들. 와, 이 책이 번역되었네! '책에 관한 책'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라 하겠다. 200마리가 넘는 '고아 코끼리의 엄마' 데임 대프니 셀드..

view_/책_ 2014.02.11

꽃처럼 붉은 울음, 꽃보다 아름다운 시 (복음과상황, 140110)

꽃처럼 붉은 울음, 꽃보다 아름다운 시 ≪꽃보다 붉은 울음≫(김성리 지음│알렙 펴냄│2013년 11월) 작가 존 버거는 시와 소설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설은 승리와 패배로 끝나는 모든 종류의 싸움에 관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모든 것이 결과가 드러나게 되는 끝을 향해 진행해 간다. 시는 그런 승리와 패배에는 관심이 없다. 시는 부상당한 이를 돌보면서, 또 승자의 환희와 두려움에 떠는 패자의 낮은 독백에 귀를 기울이면서 싸움터를 가로질러 간다. 시는 일종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열화당, 29쪽) 소설이 어떤 서사의 전모라면, 시는 그 서사 속에 갇힌 ‘부상당한 이’의 독백이다. 시는 역설의 언어이기에 평화로의 도약이 가능하다. 그래서 ..

Y에게 추천하는 2014년 1월 4주차 신간

Y에게, 언제나 빈틈없이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을 때, 무언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고 이루어야 하는 순간이 나의 계절들을 채우고 있을 때, 난 고달프고 무엇보다 외롭다. 그때 나를 구원하는 것이 한 권의 책이었으면 해. 아마 설날 전 주라 눈치 빠른 출판사들은 좋은 신간들을 숨겨 놓고 숨을 고르고 있을 거야. 그럼에도 빛나는 책들이 있으니, 눈치가 없거나 자신감이 넘치거나. 1월 넷째 주, 너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야. (ps. 이미지를 클릭하면 알라딘으로 간다네. 난 너무 친절해...) "리추얼이란 하루를 마치 종교적 의례처럼 여기는 엄격한 태도이자, 일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유용한 도구,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반복적 행위를 의미한다.” 지난 400년간 161명의 예술가, 건축가, 과학자 등의..

view_/책_ 2014.01.27

집에 가는 길. 어제는 그런 꿈을 꾸었다. 길을 걷는데, 도무지 도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좌절이 아니었으며 어떤 환희였다. 끝없는 곡절과 리듬이 도상에 있었다. 몸은 따뜻했고 정신은 조금씩 더 맑았을 것이다. 끝을 상상할 수 없으므로 뛰지 않았다. 호흡이 조용히 흔들렸을 뿐이며, 그리하여 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아침이 왔다. 아쉬움. 그 아쉬움이 이 밤에 아득하고 집에 가는 길이 호젓하다.

窓_ 2014.01.24

강신주 유감 혹은 변호

"철학은 '독고다이' 상담으로, 심리학은 '쪽집게' 처방으로.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작년 연말, 강신주의 ≪다상담≫을, 그리고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를 살펴보다 페이스북에 남긴 단문이다. 비록 여러 자리에서 강신주나 김형경에 대한 날선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지만, 그들에 대한 일면의 긍정적인 평가도 철회할 생각이 없다. 푸코는 “사고에 대한 사고의 비판 작업”을 통해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으로 철학을 정의하였다. 강신주는 현장에 조응하는 철학적 인문학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억압받는 군중의 욕망에 무능했던 숱한 철학자들과 달리, 그는 투쟁했으며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철학 Vs 철학≫을 위시한 숱한 저작들은 군더더기 없는 그 열매들이다(물론 인터뷰집이나 ≪다상담≫류의 강..

窓_ 2014.01.23

Y에게 추천하는 2014년 1월 3주차 신간

Y에게, 좋은 책에 대한 확신은 많이 무너졌지만 좋아하는 책에 대한 마음은 점점 또렷해지길 원해. 편향성이 도드라지지 않는 어떤 목록엔 별다른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 중요한 건, 너의 목록이어야 한다는 거지. 네가 하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옳다고 여기는 것, 분노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담긴, 그래서 그 목록을 보면 네가 보여야 하는 거지. 1월 셋째 주, 너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야. 옳은 문장만큼 난해한 것이 없지. 이 책이 그래. 어렵고 고달픈, ‘활’이 되는 ‘말’의 향연. 아직도 정기구독 안하고 있다고? 나쁜 놈. 2008년 첫판에서 2014년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 속 낱말을 충실하게 반영했다고 하네. 출판계에 있다보면 보리에 대한 온갖 뒷담화(?)를 전해 듣..

view_/책_ 2014.01.18

5년 뒤에도 당신, 아름다울 거죠?

5년 뒤에도 당신, 아름다울 거죠?≪할람 포≫(Hallam Foe, 2007) 오프닝에 등장하는 일러스트 에니메이션, 둥지 속 작은새는 주인공 할람 포의 메타포일 것이다. 엄마는 연약한 자신을 버리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믿을 수 없는 추문과 “네 엄마와 자는 기분은 어때?(Does it feel like you’re fucking Mummy?)”라고 비아냥거리는 새엄마 사이에서, 할람은 그만 길을 잃는다. 그리고 결국, 죽이고만 싶었던 새엄마를 욕망하는 소년은 도시로 떠난다. 회색빛깔 에딘버러는 할람의 쓸쓸함과 닮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할람은 엄마와 닮은 한 여인을 쫓고, 마침내 사랑하기 시작한다. 다만 그 사랑은 그의 둥지 안에서 관음적 시선으로만 표출될 뿐이다. 소년의 페티시즘은 아슬한 곡..

view_/영화_ 2014.01.16

레어아이템, 김연수欄

손바닥만한 작은책이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책 ≪김연수欄(란)≫. ≪원더보이≫ 사은품으로 받았던 것 같다. ≪원더보이≫보다 이 책을 먼저 읽던 기억이!그의 블로그에 썼던 독서일기를 모은 것인데, 비매품으로만 발매되었던 '레어'아이템. 이 책을 왜 좋아하냐면 이런 문장들 때문에. 김연수를 왜 좋아하냐면 이런 문장들 때문에. "추리소설의 합리성은 탐정의 합리성이며 정신치료의 합리성은 의사의 합리성일 뿐이다. 합리성과 진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실은 가끔 모두에게 드러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진실의 대부분은 모두의 진실이 아니라 누군가의 진실일 확률이 더 많다. 왜냐하면 우리는 합리성과 진실을 착각하니까."(27쪽) "진실이란,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말하지 못하는 부분에 그가 하고 싶..

view_/책_ 2014.01.14

우리도 그들처럼, 들국화로 필래

우리도 그들처럼, 들국화로 필래≪들국화≫(2013) 쇠퇴의 조짐이 보이나, 그들은 세월을 넘어 여전한 ‘들국화'였다. "또 다시 들국화로 필래"()라는 노랫말에 가슴은 요동쳤다. 조동진과 김민기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와 는 전인권의 목소리를 만나 그 애달픔을 후드득후드득 떨친다. 두번째 시디는 그들을 향한 우리의 오랜 환호를 각성시킨다. 전인권이란 독보적 보컬에 대한 추억은 최성원과 주찬권의 목소리와 어울리며 한걸음 더 전진한다. 최성원의 솔로곡들은 우정의 증표로 들국화의 노래로 새겨져 있다. 시디에만 실린 는 그들을 추종했던 우리에 대한 속깊은 배려겠다. 고이 간직하련다. 그리하여, 우리도 그들처럼 들국화로 다시, 언제나, 어디서나 피어날 것이다.

view_/음악_ 2014.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