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돌아와서 나의 역할은 보통, 아이들과 한바탕 놀기와 아이들 씻기는 일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씻기기 시작하면 아내는 청소를 하고 잘 준비를 한다. 아내가 인정하는 바, 청소는 내가 더 잘한다. 아이들 씻기는 일은 아내가 더 잘한다. 솔직히 난 대충 씻긴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내가 씻기는 이유는, 아내가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종일 밖에서 보낸 아빠는 아이들과의 스킨십이 절실한 까닭이다. 여섯 살 예지를 씻기면서, 언제까지 이 아이를 씻기는 이 호사스런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종종 생각했다. 아이는 어린이가 되고 소녀로 자란다. 조금 있으면 아빠랑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겠지, 그런 상상을 하면 서글펐다. 다 씻은 후에 예지의 머리를 드라이한다. 이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