霓至園_/rainbow_

여섯 살 예지를 씻기면서

Soli_ 2012. 12. 1. 00:39

퇴근하고 돌아와서 나의 역할은 보통, 아이들과 한바탕 놀기와 아이들 씻기는 일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씻기기 시작하면 아내는 청소를 하고 잘 준비를 한다. 아내가 인정하는 바, 청소는 내가 더 잘한다. 아이들 씻기는 일은 아내가 더 잘한다. 솔직히 난 대충 씻긴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내가 씻기는 이유는, 아내가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종일 밖에서 보낸 아빠는 아이들과의 스킨십이 절실한 까닭이다. 

여섯 살 예지를 씻기면서, 언제까지 이 아이를 씻기는 이 호사스런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종종 생각했다. 아이는 어린이가 되고 소녀로 자란다. 조금 있으면 아빠랑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겠지, 그런 상상을 하면 서글펐다. 다 씻은 후에 예지의 머리를 드라이한다. 

이 때가 가장 설렌다. 예지의 머리카락을 한올씩 매만지며, 매일매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씩 더 자란 예지를 본다. 설렘이 소슬한 그리움과 뒤엉켜 지금 이 순간의 절정이 된다. 가끔 눈물도 났다. 

며칠 집에 있으니, 여행을 다녀오면서 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아이들 씻기는 일이 평소보다 고됐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대충 씻기거나 가끔 게으름을 피고 딴짓하고 있으면 아내가 슬그머니 씻기곤 했다. 여행 다녀온 후, 예지와 예서를 다시 씻긴다. 그리고 반성하고 다짐한다. 그래, 예지가 아빠랑 씻는 것 싫다고 할 때까진 이제 게으름 피지 않으마. 약속할게, 예지.(그러나 예서! 넌 내 몫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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