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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아래 봄을 상상하던 아이들

시린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파란 하늘 아래 봄의 상상력을 한껏 즐기더군요. 3월 마지막 주, 아이들과 함께 호수공원에서 담았던 사진을 이제서야 정리합니다. 예지는 나뭇가지에서 움트는 생명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살핍니다. 놀이터 옆 강아지 벤치입니다. 예서는 처음에 겁을 내더니 누나 따라 용기를 내어 강아지 등에 올라탑니다.그러고는, 아빠, 강아지 집에 데려가자요, 합니다. 철봉에 매달아 예서 고문하기.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아빠는 늘 술래인데다가, 빨리 찾으면 혼나기까지 합니다. 호수공원에 있는 선인장연구소에 갔습니다. 예서는 선인장더러 괴물이랍니다. 예지는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보고 저리 행복해 합니다. 아빠, 바위가 따뜻해요. 아빠도 누워 봐요, 합니다...

霓至園_/rainbow_ 2013.04.16

아버지에 대한 기억 한 자락

아버지 추도예배를, 이번엔 천안 누나네 집에서 드렸다. 먼길 오가느라 몸은 지쳤는데, 가슴은 더욱 생생히 그날을 추억한다. 아니, 정신은 지쳤는데 몸이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79년 4월 3일, 아버지는 소천(召天)하셨다. 아버지는 암을 앓으셨고, 죽음 직전 예수를 영접하셨다고 한다. 그즈음 집에는 친척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어머니는 종종 소리 내어 우는 누나를 달래곤 하셨다. 난 아버지의 냄새가, 가래 끓는 소리로 탁하게 갈라진 낮은 목소리가 싫었다. 담배 냄새 절은 삼촌들이 얼굴을 부벼대는 것도 싫었다. 집앞 골목에서 세발 자전거를 타다 아버지의 죽음을 들었다. 난 뭔지 모를 해방감에 잠시 기뻤던 것 같다. 아, 무서운 아버지께 불려가 그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는구나, 저 친척들도 이제 우리집..

窓_ 2013.04.15

잔인한 봄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숱한 슬픔을 각오해야 하던 때가 있었단다. 단지 신앙한다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짓밟혔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교회는 슬픔의 사람들을 품고 지켰고 북돋았다. 복음은 교회 안에서 생명이 되고 불꽃이 되었다. 아득히 먼 옛날, 그런 때가 있었단다. 그러나 지금, 나의 기독교는, 슬픔의 사람들을 지키기는커녕, 그들을 도리어 억압하고 짓누른다. 기꺼이 어느 누군가를 모욕하고 차별할 수 있게 되었다. 주류의 종교는 기꺼이 그럴 만한 권력이 있으니까. 나의 기독교는 그렇게 나의 절망이 된다. 무엇으로 절망을 딛고, 다시 그 아득한 희망, 불꽃 같던 생명에 닿을 수 있을까. 묻고 또 묻는 잔인한 봄이다.

窓_ 2013.04.11

"공부의 삶" 너머 "공부의 길"

그달에 읽었던 최고의 책은 "복음과상황"에 소개합니다. 5월호에는 세르티양주의 과 이계삼의 을 소개했습니다. 이 좋은 책들이 널리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세르티양주와 이계삼의 공통점은, 치열한 고독이라는 전제, 그리고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사람이 걸음을 더 말리 내딛는다’는 각오를 가졌다는 것이다. 세르티양주가 공부의 자세와 방법을 다루고 있다면, 이계삼은 그 공부가 성스러운 독방이 아닌 거친 광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디, 세르티양주에게 한껏 자극 받은 공부에 대한 충만한 결의가, 이계삼이 교직을 내려놓고 뛰어든 그 광야 같은 세상에서 단단한 걸음으로 펼쳐지길 바란다."(서평 중에서)

view_/책_ 2013.04.09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복음과상황, 130302)

★에 대한 서평은 두 버전으로 썼습니다. "복음과상황"에 기고한 서평에서는 또다른 성폭력 피해자인 철학자 수잔 브라이슨의 책 와 비교하여 트라우마의 문제와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서평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인 저자 은수연에게 초점을 맞추되, 우리나라 성폭력의 현실과 성평등의 문제를 부각시키고자 했습니다. ★"복음과상황"에는 분량이 많아서 조금 덜어냈습니다. 블로그엔 전문 그대로 싣습니다. 복음과상황(2013년 4월호)_“독서선집”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은수연 지음│이매진│2012)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수잔 브라이슨 지음│인향│2003) 삶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저마다의 ..

거뭇한 어른들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고향' 같은 책 (CTK, 0313)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13년 4월호 거뭇한 어른들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고향’ 같은 책 [서평]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현주│작은것이아름답다│2009)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두 분은 돌아가셨다. 그래서 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여름방학이면 삼촌과 이모들이 계신 시골집에 갔으나, 친구들은 할아버지가 계신 고향으로 갔다. 시골집과 고향의 차이, 아마 내가 부러웠던 건 그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껜 차마 말 못할 것도 투정하며 고백할 수 있는, 어른 비슷한 부담스런 거뭇한 존재가 되어서도 기꺼이 달려가 그 품에 안길 수 있는 ‘할부지’에 대한 동경. 나에겐 그런 ‘고향’이 없었다. 그런 까닭일까. 난 아주 바..

기고_/CTK_ 2013.04.03

페이스북 단상_2013/03/20-04/03

2013/04/03 _우리집 모자간 평범한 대화. 엄마: 예서, 너 아저씨지?!예서: 아야, 나 빵꾸야! _어제 저녁의 행복에 대해 짧게 썼더니 많은 분들이 덧글과 메시지로, 문자로 물으신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보통 어떤 행복은 성취감과 동일시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떤 성취, 어떤 성공은 행복하다. 성취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일 자체가 그렇기도 한다. 유시민도 하고 싶은 일을 밥벌이로 삼는 행복을 갈망한다고 했다. 마땅히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허나, 어떤 일이나 성취, 성공 같은 것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이 있다. 사람과의 만남이다. 난 아내 순일을 만나 행복하다. 평생 지속가능한 유일한 행복일 것이다. 어제 저녁도 그러하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이 그러했다. 어떤 만남은 그 자체로 나..

窓_ 2013.04.03

세상의 모든 정의는 연대하여 평화를 이루어낸다 (오마이뉴스, 130403)

★"4.3"을 맞이하며, 오래 전에 쓴 글을 꺼내어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습니다. 제가 만든 책을, 제가 서평을 써서 소개한다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독한 제주 강정마을에게 그런 편파성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이 출간된 직후 써서 모 매체에 싣기 위해 썼던 글입니다. 그런데 그 매체는, 이 책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아 청탁을 철회했습니다. 그것도 마감 날 그랬습니다. 그때 글을 다시 꺼내어 조금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조성봉 감독님의 사진을 입혔습니다. "4.3"의 비극은 강정마을의 슬픔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전쟁 같은 하루를 견디고 계실 강정에 계신 활동가들, 주민들의 평화를 빕니다.★오마이뉴스에 20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평화의 섬'을..

4월 3일, 제주도는 여전히 고독하다(<지슬> 리뷰,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에 21번째 기고한 글이며(오름), "제주도의 고독, '지독한 슬픔'으로 초대합니다"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4월 3일, 제주도는 여전히 고독하다 -영화 리뷰- 영화 의 오멸 감독은 제주 방언에 서툰 관객을 위해 자막을 선사한다. 친절함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제주민들이 우리를 '육지사람'으로 여기듯, 나도 그들을 그저 '섬사람'으로만 여겼던 것 같다. 그들의 인식에는 깊은 슬픔과 원한이 스며 있지만, 난 그저 사치스런 환상에 머물러 있다. 언젠가 제주도를 여행하다 유독 불친절한 주민 한 분을 만났다. 사소한 오해였지만, 그는 우리 일행에게 거침없는 분노를 쏟았다. 그때 들었던 된소리와 독특한 억양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서울말을 쓰다가도 화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제주 방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