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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 팀장을 낭만적이라 하는가"

"기풍이란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습관이며 가치관이자 확신의 반영이다.""누가 오 팀장을 낭만적이라 하는가, 생존 자체를 원하는 사람이다." (이상, 130수)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요즘의 나를 부러워 한다. 여기저기 기고한 글이나 강의하는 것을 '활약'으로 평가하고, 그 엄중한 행위로 나의 존재감이 "돋보인다"고 칭찬한다. 거기다 '낭만적인 프리랜서'라고, 자신들의 샐러리맨 인생을 부러 대비시키며 '부럽다'고 한다. 그런 경우, 난 대체로 그저 웃으며 듣는(척 하는) 편이다.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의 현실은 비루하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프리랜서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프리랜서를 계속 할지 고민하면서도, 나같이 홀로 버는 가장으로선 고민 그 자체가 사치인 것만 같다. 그래서..

窓_ 2013.05.26

기억의 편파성에 관한 변호

덧없이 흐르는 것 같지만, 시간은 분명한 잔해를 남긴다. 그리고 편파적으로 재구성하고 기록한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이라 부른다. 시간을 그저 '덧없다'고, 우리의 기억을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다. 따라서 망각을 핑계 삼는 비겁함을 포기하고, 모든 부당한 슬픔을 기록하며 나의 시간을 견디고 극복해야 한다.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말한 것처럼 "용기의 핵심은 신중함"이므로.

窓_ 2013.05.25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마이뉴스, 130523)

★오마이뉴스에 32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실패한 대통령'의 진심... 그대로 느껴지나요?"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면 좋겠습니다[서평] (이백만 지음|바다출판사 펴냄|2013년 5월) 2009년 5월 23일 오전, 서해의 작은섬 덕적도는 고요했다. 봄의 햇살은 바다와 땅의 경계를 허물며 단단한 빛깔로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여행의 막바지 여흥을 즐기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그때, 다급한 전화가 울렸다. 내 핸드폰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핸드폰에도 거의 동시에. 불길함을 예감하며 받던 전화 너머로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각기 다른 이들이 거의 비슷한 목소리로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뜨거운 슬픔이 나라를 장악했다. 가슴을 여미던 슬픔은 ..

스테판 에셀, 죽음도 차마 멈추지 못한 진보의 꿈 (오마이뉴스, 130521)

★ 선정작_2013년 5월 ★오마이뉴스에 31번째로 기고한 글입니다. 스테판 에셀, 죽음도 차마 멈추지 못한 진보의 꿈[서평] 낭만적인 레지스탕스의 마지막 책 (스테판 에셀 지음│목수정 옮김│문학동네 펴냄│2013년 4월│1만4천500원) 발터 벤야민은 진보를 '태양을 향하여 얼굴을 쳐드는 꽃들'과 '천국에서 불어오는 폭풍'에 비유한 적이 있다. 태양을 향하여 자신의 은밀한 시선을 고집하는 향일성(向日性)과 천사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여 마침내 미래로 떠밀어내는 거대한 폭풍에 순응하는 일은, 진보주의자의 사명과도 관련이 있다. 그런 면에서, 자본의 폭력에 맞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하고 호소하던 '낭만적인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은 우리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진보주의자의 전형에 가깝다. 2010년, ..

'1980년 광주', 그들의 노래를 들으라 (오마이뉴스, 130518)

★ 이달의 당선작(리뷰)_2013년 5월★오마이뉴스에 30번째로 기고한 글입니다. '1980년 광주', 그들의 노래를 들으라[서평]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공선옥 지음|창비|2013년 4월) 나는 1995년, 강원도 춘천 102보충대에 입대하여 신병교육대에 배치되었다. 첫날 밤, 내가 속한 내부반 조교는 대뜸 전라도 놈들은 기립하라고 소리치며 머리를 박으라고 했다. 6주 훈련 동안 우리는 수시로 기합을 받았는데, 같은 말이라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동료들은 조금 더 모질게 당했다. 제대를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문득,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과 달리 서울말을 곧잘 쓰는 것을 발견했다. 언젠가 광주 태생의 선배에게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내게 '넌 아직 광주를 모른다'며 웃었다. 쓸쓸한 웃음이었..

천만 번 흔들리는 '불혹'에게 띄우는 편지(오마이뉴스, 130513)

★오마이뉴스에 29번째로 기고한 글입니다. 천만 번 흔들리는 '불혹'에게 띄우는 편지[서평] 항심(恒心)의 결기를 촉구하는 아포리즘의 향연 나의 '20년 지기' 택수에게, 우린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면 좁디좁은 골방에 앉아 먼동이 터오던 새벽까지 함께하곤 했었지. 짐짓 호방한 목소리로 세상을 논하거나, 유치한 언사로 사랑을 고백하고 조롱하던 스물 언저리, 남루했지만 적어도 비루하진 않았던 그때. 영원할 것 같던 청춘의 치기는, 어느 덧 세월 앞에 추억이 되었네. 벌써 스무 해가 흘렀다. 공자는 '미혹되지 않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불렀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린 가녀린 봄바람에서 쉬이 흔들리고, 한순간의 모함에도 가슴이 무너지는 세월을 산다.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성년이 된, 우리 '92학번'과 그 ..

거의 유일한 희망을 향한 '청춘'의 결기 혹은 위로 (오마이뉴스, 130508)

★오마이뉴스에 28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386'을 위시한 '좌파 꼰대'들에게 권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거의 유일한 희망을 향한 '청춘'의 결기 혹은 위로 [서평]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한윤형 지음│어크로스 펴냄│2013년 4월) '청년 논객'으로 불리는 한윤형의 책인데다 라는 제목마저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이 책의 독자가 꼭 '청년'일 필요는 없다. 청년 세대 담론의 중요성은, 부모 세대 혹은 386세대와의 비교 우위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청년 세대는 '한국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表層)'이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 부모 세대의 고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책은 이 시대에 도래한 '잉여의 비루함..

우리를 다독이는 반짝반짝 빛나는 희망 (편들고 싶은 사람-은수연 편, 복음과상황, 130406)

★복음과상황 2013년 5월호 “편들고 싶은 사람-은수연 편”으로 실었던 원고입니다. 실제 잡지에 실린 원고는 구성과 분량면에서 조금 다르고, 당연히 제 블로그의 글이 좀 더 깁니다. 우리를 다독이는 반짝반짝 빛나는 희망 의 저자 은수연 씨 엄밀히 말해, 그녀의 편을 들고자 만났으나 그녀가 우리의 편을 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녀는 숱한 고통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보듬는다. 그녀를 보고 가슴속 깊은 상처를 꺼내 놓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신음을 토한다. 지독한 슬픔, 혹은 두려움과 마주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길을 걷는다. 그녀는 앞서 걷는 희망의 존재인 셈이다.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친족 성폭력 생존자 수기를 썼지만, 그녀를 희망의 지표로 삼는 사람..

죽음을 견뎌야만 이를 수 있는 '생존자'의 길 (오마이뉴스, 130502)

★오마이뉴스에 27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여성=꽃'? 성폭력 양산하는 그 생각, 집어치우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죽음을 견뎌야만 이를 수 있는 생존자의 길 [서평] 꽃을 던지고 싶다_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너울 지음│르네상스 펴냄│2013년 3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여자 '정혜'의 일상은 언뜻 단조롭고 평화로운 듯 보인다. 꽃이 놓인 식탁, 아파트 화단에서 주워온 고양이 한 마리가 노니는 풍경 속에 그녀는 홀로 외롭다. 어린시절 고모부에게 강간당한 '정혜'는 결혼하지만, 신혼여행에서 '첫 섹스'를 묻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결혼을 끝내고 만다. 고모부를 죽이는 것도 자신을 용납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 아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도 사랑이 다가오지만, 그 사랑이 그녀의 오..

잠시 바람이 되어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임진각 평화누리에 다녀왔습니다. 예서는 바람에 날려갈까봐 무섭다고 아빠 곁에 붙어 있었고 예지는 바람개비 사이로 요정이 되어 거닐었으며 아내는 아이들이 팽개 연을 하늘에 띄우며 잠시 쉬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들 속에서 잠시 바람이 되어 예서에게 장난을 걸고, 예지의 마법을 돕고, 아내의 쉼이 되고 싶었지요. 그렇고 그런, 바람 부는 오후였습니다.

霓至園_/rainbow_ 201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