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오마이뉴스_

세상의 모든 정의는 연대하여 평화를 이루어낸다 (오마이뉴스, 130403)

Soli_ 2013. 4. 3. 16:22

"4.3"을 맞이하며, 오래 전에 쓴 글을 꺼내어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습니다. 제가 만든 책을, 제가 서평을 써서 소개한다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독한 제주 강정마을에게 그런 편파성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이 출간된 직후 써서 모 매체에 싣기 위해 썼던 글입니다. 그런데 그 매체는, 이 책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아 청탁을 철회했습니다. 그것도 마감 날 그랬습니다. 그때 글을 다시 꺼내어 조금 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조성봉 감독님의 사진을 입혔습니다. "4.3"의 비극은 강정마을의 슬픔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전쟁 같은 하루를 견디고 계실 강정에 계신 활동가들, 주민들의 평화를 빕니다.
오마이뉴스에 20번째로 기고한 글이며, "'평화의 섬'을 지키는 사내... 좌절은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의는 연대하여 평화를 이루어낸다
[서평]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송강호 지음/IVP/2012)





한라산에서 잉태되어 해안의 용암 바위로 둘러 앉혀진, 서귀포 외진 마을 강정엔 언제부턴가 어슬어슬한 슬픔이 깃들고 있다. 이런 슬픔이 강정에겐, 제주에겐 낯선 것이 아니다.(<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본문 21쪽)

2005년 1월, 노무현 정부는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12조에 근거하여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였다. 그 지정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제주는 예로부터 평화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도둑, 대문, 거지' 없는 삼무(三無)정신은 바로 평화를 의미한다. 특히, 현대사 최대 비극인 4.3 항쟁의 아픔을 겪는 등 한(恨)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극복한 제주인들의 가슴에는 항상 평화가 자리하고 있다.("제주, 세계 평화의 섬" 홈페이지 참조. http://www.peace.jeju.kr)

'평화의 섬'이란 이름에는 역설적으로 오랜 슬픔의 한이 서려 있으며, 그런 까닭에 평화를 염원하는 절절한 희망이 반영되어 있다. 제주 4.3 항쟁의 비극적 역사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며, 다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더 나아가 제주도를 동북아 지역의 평화 지대로 만들겠다는 비전도 서려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의지가 무색하게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세계 평화의 섬' 제주, 그리고 강정의 '해군기지' 건설

해군 당국은 제주 화순항에 해군 부두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계획을 포기하고 새로운 후보지를 물색하였다. 그리고 강정마을을 유력한 후보지로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2007년 4월, 당시 강정 마을회장은 불과 87명의 주민 동의를 박수로 얻었다며 해군기지 유치를 추인했다. 이는 명백한 절차상 위법에 해당되는 것으로 향촌 자치규약에서 정한 공고일, 수시 방송 의무, 공고 내용 등을 위반한 것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저항이 이어졌다. 분노한 주민들은 곧 마을회장을 해임하고 새로운 마을회장을 선출하여, 같은 해 8월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실제 강정마을에 거주하는 1,050여 명의 주민 중 725명이 참여하여 680명, 즉 94퍼센트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결의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해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공사를 강행했고 주민들의 저항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강정은 격동의 땅이다. 이 책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는 국제구호단체인 사단법인 "개척자들"의 대표였던 송강호 박사의 강정마을 투쟁기이다. 그는 르완다, 소말리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반다아체, 카슈미르, 아이트 등에서 평화 활동가로 섬기면서 평화와 화해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전쟁과 분쟁, 재난 피해자들의 고통과 함께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열강에 맞서 약한 자들의 벗이 되어 전쟁의 참화를 막고자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교를 만들고, 고아를 위한 집을 짓고, 아이들에게 평화의 언어와 노래를 가르쳤다. 그런 그가 아체에서 제주도의 소식을 들었다. 

송강호는 아체에서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 된다는 소식은, '우리나라가 정말 전쟁 없는 나라가 될 수 있다면'이라는 희망으로 따뜻하게 다가왔다.(본문 71쪽)

하지만 송강호의 기대와는 달리, 제주도의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당시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반대 투쟁의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저항 운동은 흐지부지 되고 있었다. 송강호는 그런 강정의 현실을 목격하며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는 고심 끝에 강정에 머물러 투쟁에 합류했고, 투쟁 운동을 전면에서 이끌었다. 

해군기지 반대 투쟁의 시작, 그리고 절정

ⓒ조성봉

송강호가 투쟁에 합류한 것은 영화감독이자 영화평론가였던 양윤모 씨의 영향이 컸다. 제주 태생인 그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와서 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리고 당시 두 번째 구속 수감되어 옥중에서 단식 투쟁을 이어갔다. 세계의 석학이자 실천하는 지식인 촘스키 박사를 비롯한 수많은 활동가들이 그의 석방을 탄원했다(그는 이 책이 발간된 이후, 세 번째로 구속되어 다시 단식 투쟁을 전개하였다). 송강호는 양윤모 감독이 기거했던 곳에 자리를 잡고, 그의 자리를 지켰다. 

행동하기 시작한 송강호는 '투사' 같았다. 단순히 양윤모 감독의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훨씬 더 무모했고 저돌적이었다. 포크레인을 막아서고 점령했다. 시멘트를 부으면 그리로 뛰어들었다. 해군기지 공사를 수주한 삼성과 대림 건설의 중장비들이 사납게 몰려올 때, 그는 비닐하우스 꼭대기에 쇠사슬을 걸어 목에 둘렀다. 쇠사슬을 강하게 틀어쥐며 버텼고, 그의 다리를 성공회 김경일 신부가 붙잡았다. 극단의 상황에서도 그는 태연했고 평온했으며 한편으로 유쾌했다. 그러자 중장비들은 포기하고 물러섰다. 작은 승리였지만, 어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기쁨을 만끽했다.(본문 81-82쪽) 

정부와 해군 당국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촘스키가 지적하듯, 제주 해군기지는 다분히 미국의 대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송강호는 오만한 군사주의적 만용은 처참한 전쟁 위험성만 높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만일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현행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의해서 미국의 군사적 야욕이 허용되는 셈이고 미국은 이 해군기지를 중국 견제를 위해서 사용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은 해군기지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초 강대국의 다툼에 스스로 끌려들어가 비극적인 역사의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제주도는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이고 4.3 항쟁 희생자들의 염원입니다.(본문 105쪽)

또한 그는, 정부의 해군기지 강행 배경에는 어떤 이해관계가 깔려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정부는 제주도에 '평화의 섬'이란 이름만 붙이고 아무런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했어요. 그리고 방위산업이란 명분 아래 거대 재벌들의 상업자본을 비호하죠. 자본주의와 돈과 칼이 같이 가고 있어요. 실제로 칼은 돈을 지키고, 돈은 칼을 만들어 줘요. 현대사회에 속한 모든 사람을 구속하는 가장 큰 양대 축이 바로 돈과 칼이고, 재벌과 군벌이라고 생각해요.(본문 88쪽)

송강호와 평화 활동가는 자신들의 안위를 제쳐두고 투쟁을 이끌었으나, 강고한 권력 앞에 그들은 무력했다. 기독교인인 송강호는 아침마다 구럼비에서 목놓아 기도했다. 펜스와 철조망으로 구럼비로 가는 길이 막힌 후에는 카약을 타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수영을 해서라도 기어코 구럼비에 들어가 기도했다. 

ⓒ조성봉

2012년 4월 1일 구럼비 본발파가 진행되던 현장에서, 철조망을 넘어서다 경찰에 의해 무참히 저지되었고 곧 체포되었다. 체포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행이 있었고, 송강호는 자신을 폭행했던 경찰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했다. 그가 체포된 4월 1일은 마침 그의 쉰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그리고 제주의 슬픈 역사가 새겨진 4월 3일, 그는 운명처럼 구속되었다. 

세상의 모든 정의는 연대하여 평화를 이루어낸다

이 책은 평화의 길을 걸었던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다.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1, 2부는 그의 평화 활동과 강정에서의 투쟁을 기록하고 있으며, 3부는 제주교도소에 수감된 옥중서신과 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직전, 그는 2012년 9월 28일 수감 181일 만에 직권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강정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는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3월 1일 제주 관덕정에서, '제주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대회를 주도하였다. 1947년 3월 1일은 제주 4.3 항쟁이 시작된 날이고, 관덕정은 제주민의 항거가 시작된 곳이다. 그들은 여전히 강정마을을,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 희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평화의 사람은 세상과 불화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평화의 길은 아득하다. 그러나 그 아득한 길을 걷는 이들로 인해 우리는 희망을 얻는다. 세상의 모든 정의는 연대하여 평화를 이루어낼 것이다. 희망은 절망 따위에 좌절하지 않는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_강우일 주교의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