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병화의 “공존의 이유”라는 詩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를 생각하는 깊이를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어디메쯤 간다는 걸 보일 수가 없기 때문에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
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또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만날 때부터 헤어질 준비를 하고 살아야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해 마음을 쏟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선 ‘작별’을 준비해야하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은 그래야만 사람과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기에, 상처도 적당히 남겨야만 새로운 시작을 기약할 수 있는 까닭에,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에 대하여 처음부터 ‘작별’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하면, 순일에게 다가가는 진형에게도 그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벌써부터… 혹시 있을지 모르는 헤어짐을 각오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가가면서도 조심스럽고, 사랑하면서도 가슴은 자꾸만 아파 오는지도 모릅니다.
2.
순일에게 드리고픈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순일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감정의 깊이’와 ‘헌신의 각오’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사랑은 감정이기도 하지만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제 자신이나 순일의 존재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지 않았습니다.
저를 믿지 않아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더라도 제 사랑만은 의심하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함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주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러지 못해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받아주시길. 또 불편한 오해가 생기거나, 속상한 이야기들이 전해져올 때에도 제 마음만은 받아주시길…
둘째, 언제든 마음을 접으셔도 괜찮습니다.
노력해도 열 수 없는 것이 마음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하시면, 거기서 멈추겠습니다. 더 이상 욕심 내지 않겠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것 중의 하나가, 순일이가 원하는 만큼만 다가가는 것입니다. 순일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만 다가갈 수 있기를.(이것은 어떤 물질적인 선물 따위를 얘기하는게 아니라, 근본적인 순일과 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죠…)
혹 순일이가 저에게 빚진 마음이 있어서, 받은 것이 있어서 마음이 약해질 필요도, 망설일 필요도 없습니다. ‘작별’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프지만, 가슴이 저려오지만… 기꺼이 그것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순일과 저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상황 때문에, 제3자나 그 밖의 문제 때문에 ‘작별’을 고하지는 마십시오. 그것만큼 비참하고 슬픈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에는 승복할 수도 없습니다.
혹 작별을 고하고 싶은데 말하기가 그래서, 그런 이유들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슴이 말하고 있는 것,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가슴에 부어주시는 감성들, 의지들…
그것에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일 마음이 멈추었다면, 저도 멈추겠습니다.
그리고 힘들겠지만, 정말 힘들겠지만…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3.
이런 편지를 꼭 써야하나 하는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궁상맞게(?)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헤어짐을 얘기하는 것인지, 또 이런 얘기 할 정도로 깊은 사귐에 있지도 않는데 오버(!)하는 것은 아닌지…. 제가 생각이 너무 많은 걸까요?
더 솔직히 말하면, 순일과 헤어지기 싫습니다. 진짭니다.(^^)
유학이나 공부, 그런 것 하나도 이루지 못해도, 순일 하나만 얻을 수 있다면…
‘세상에서 받을 복은 다 받았다!’고 그렇게 고백할 날이 왔음 좋겠습니다.
제 유치한 고백이 심상치 않죠?(^^;)
행복한 만남… 무엇보다 그 안에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 웃으시길-.
2003.6.3. 행복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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