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에서는 미안하고 고마웠단다.
아프고 열이 나 하루종일 무력했던 나를 성실하게 섬겨준 것. 그곳이 간만에 떠난 안면도의 바닷가가 아니었다면 덜 미안했을 텐데. 가장 더웠다던 날에 추워서 벌벌 떠는 나를 위해 땀 흘리며 시장을 보고 옆에서 수건을 얹어주며, 죽을 끓여주고, 시원한 수박 그리고 약을 먹여주어서... 참 고마웠단다. 잘 아프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순일 앞에서 한번 앓고 나니깐 거짓말장이가 된 것 같아서도 몸둘바를 몰랐단다.
그렇게 종일 앓고 나서야 자연휴양림이며 꽂지 바닷가를 겨우 몇걸음 걸어본게 이번 여행의 전부였는데, 다만 다음을 기약하자는 말 밖에 오늘은 내가 해줄게 없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젠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건강을 좀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미안했다.
교회 다녀오는 길에 기분이 별로 안좋았단다. 주일이면 찾아오는 상실감, 예배 때마다 느껴지는 공허감. 몇주 숭의교회에서는 괜찮았는데, 오늘 집앞 교회에서 또 그 패배감들이 느껴져 속상했단다. 하나님의 공동체라는 바운더리가 갖는 중요성. 우리의 보잘것 없는 믿음이 기거할 공동체를 벗어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은 점점 깊어만 가는 데,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발걸음은 왜 자꾸만 더뎌만지는 것일까?
그래서 기분이 안좋았고, 또 시장 같이 갔다 오는 길에 순일의 별 것 아닌 말에 또 기분이 상했단다.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 아마 앞서 얘기한 그 바운더리를 벗어나 있기에 더욱 그러하리라 짐작은 하지만. 그래서 또 다시 주일 오후를 무기력하게 보내고야 만다.
아직 성장하는 과정이라 이해해주렴. 지금의 내 자존감이 그렇게 낮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순일한테는 아직 그렇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가깝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런 저항과 경계가 없기에 불현듯 다가오는 반응들에 오래된 상처들이 다시금 분노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오늘이 지나면, 또 그만큼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물론 그 나아짐의 진도를 무척 더디게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제, 오늘의 미안함을 내일까지는 가져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선뜻 입을 열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않아 이렇게 편지를 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깊이 사랑하는 우리가 되자.
사랑해.
ps. 우리 다드림교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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