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상여

Soli_ 1989. 6. 1. 21:43

상여
 
 
1.
지나는 수레의 길게 늘여뜨려진
그림자에 따르는 노인의 긴 한숨
—어머니의 울음에 꽃수레를 보았을 때—
오래 전 기억을 내게 전해주던
얼굴의 조각을, 잃어버린 의미를
알았을 땐,
이미 그건 어머니의 정당한 대가가 아니었다
흐느껴 땅을 치던 하루가 지나고
지난 만큼 아쉬워지던 울음소리, 
다시 다가와 춤을 추고
온통 검은 산천에 길게
또 그렇게 뿌려지던 
세상설움
 
—그때까지 내리던 비가 지금도 내리는지—
유월의 더움은 씻기우고 이제껏 떨리던
상여 위, 몸둥아리가
어머니의 한잠에 멈추어졌다
 

2.

발가벗은 거리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서로의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등뒤로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조용한 탄식에 눈동자는,
그렇게 묽게 맺혀진 노인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거리에 나앉은 노인의 내음에
피하는 사람들의 광장엔
서늘한 그늘이 깔린
상여가 있다
 
 
1989.6. 


_그리고 2005.11.1에 덧붙임
상계동 철거민들의 애환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철거를 당하던 이들의 처절한 광경을 목격하고 또 그들 가운데 한 명의 청년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실려가던 상여를 보았다. 이보다 더한, 세상의 아픔은 없는 듯 했다. "저기 서서 망연히 울고있는 한 어머니의 길게 늘어진 오후의 그늘은, 상여를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던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하고 생각했다.


_2013.2.12에 덧붙임

‎1989년에 썼던 시, 그러니까 나의 나이 열다섯 살 때 쓴 슬픔의 차가운 기록이다. 그런데 그 슬픔은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그 자리에 있다. 상여는 줄을 지어 그 길을 숙명처럼 따라간다. 다만, 나의 늙은 감성이 온갖 추상적인 언어들로 그것을 추억처럼 회상할 뿐이다. 때로 추억은 현실에 대한 모진 배반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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