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광야를 지나며

Soli_ 1997. 3. 20. 01:00

"廣野…"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길에 이르게 하리니…

너무도 분명한 그분의 약속이다. 약속. 하지만,… 잠시. 

이곳은 "광야", 같다는 느낌이다. 사막, 눈이며 입이며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씹히는
모래알갱이들. 눈을 아무리 비벼도 앞은 희미한 지평선 끝, 가물거리는 태양.
난 그 광야, 곧 없어질 발자욱 어디로 새겨야할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광야. 

내 마음은 "눈밭" 같다는 느낌이다. 지난겨울, 세상을 온통 자기 색깔로 가득히 채우던
눈 내린 겨울. 얼굴이며 손이며 너무도 시려 가슴마저 서글프던 그 겨울.
내 마음은 눈밭. 누군가를 떠나보낸 그 자리엔 그 발자욱 너무도 선명히 새겨져. 
오래도록 시려야할 가슴. 그 속엔 그들의 발자욱이 있다. 

"길"
가야할… 이제는 마음을 고쳐잡고, 다부지게 가야겠지. 
갖가지 상념이 가슴을 온전히 비워내지 못하고 있지만.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그분의 의지에 내 가슴을 비워, 소망으로. 

1997.3.20 봄, 광야를 지나며...


_그리고 2004.1.12에 덧붙임.

아무 스물네살의 겨울, 군에서 힘들어하던 때에 썼던 글입니다. 
각박한 세상, 그곳에서의 일상의 이미지는 광야였습니다. 
메마른 사막, 불어오는 사막 모래 바람에 시선을 온전히 가두지 못하던...
또는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들던 겨울, 하얀 눈밭 풍경은 참 아름다운 것이지만,
실상에서는 얼마나 가슴을 서늘케하던 힘겨움인지...

이 글을 썼던 스물네살 겨울로부터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 광여같은, 사막같은, 눈밭 같은 땅을 걸어가야 합니다. 
여전히 난 그것에 지쳐있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도 전 그분의 약속을 다시 꺼내어 읽어야 합니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길에 이르게 하리니…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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