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여기선 아직도 금서(禁書)로 남아있는 책이어서 사람들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읽은 책이었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전태일'에 대한 실체. 글쓴이의 논리에 어느 정도는 모순도 있는 것 같고 과장도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전태일이란 사람이 나타나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를 외치며 스스로 신나를 뿌린 몸에 불을 붙여 죽어간 얘기…. 그를 대하는 느낌은 단지 감동이 아니라,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긴장감을 내게 전해준다.
그는 유언장에 이렇게 쓰고 있었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金力)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못 다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긴장감. 그래, 내 존재에 대한 긴장. 크리스천이었던 전태일. 그가 죽음을 결심하기 전 까지는 삼각산 기도원에서의 고뇌와 한 목사와의 논쟁이 있었다는 것은 끝내 내게 물음표를 갖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일'은 내게 어떤 위기감을 갖게 해준다.
가장 근원적인 내 존재에의 위기… 긴장감.
난 그렇게 살고 있다. 무슨 아주 의미있는 어떤 것을 만들지도 못하고 있고, 이 생활을 정리하며 하나하나 챙겨서 주워담지도 못하고 있다.
가을이 다 지나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든다. 난 겨울을 더 좋아하지만, 그래도 이 가을엔 해야할 것이 많았는데 말야.
서울은 어떤지 모르겠다. 물론,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
난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18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근무서고 오전엔 자구, 그리고 오후엔 업무. 이렇게 반복되는 생활. 개인적인 시간이나 여유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리 힘들지는 않다. 잠도 틈틈히 많이 자구. 책도 많이 읽는다. 힘든 게 있다면 개인적인 사생활이 엄격히 통제된다는 것. 전화나 편지 쓰는 것도 그렇고, 주일에 교회 가는 건 거의 힘든 일이다. 솔직히 한 편으론 일주일에 한번 교회 가는 거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지금 그것 때문에… 많이 비틀거린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의미를 만들며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고싶은데 그러하지 못하는 건, 아직도 내게는 성숙치 못한 아둔함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게으름… 나태한 내 스스로를 아무 자책없이 '어제' 속에 숨기고 있다.
1997.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