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내가 흘리는 눈물의 이유

Soli_ 1993. 7. 3. 00:30

내가 흘리는 눈물의 이유


참 많이도 울었다. 몇해 전, 여름날의 늦은 밤—.
"…이젠 예수님만이… 내 소망이… 되십니다" 목사님 따라 한마디, 한마디 고백되어지던 어설픈 음성. 내 영접의 기도가, 목사님께 맡긴 내 두 손이 떨리던 건 아마도 주체 못하던 눈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 기도를 마친 후에도 한참이나 멈추지 않던 울음. 애써 울음을 멈추려하던 내게 "괜찮아, 계속 울어… 원래 그런 거란다"하고 웃으시던 목사님을 겨우 보았을 때, 목사님 역시 두 눈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제서야 처음 예수님의 사랑을 알았고, 그제서야 눈물은 더 이상 부끄러운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로도 많이 울던 기억. 이사야 사십삼장 일절을 묵상하며 울었고, 신상언의 글들을 읽으며 울었고, 송명희 시인의 간증을 들으며 울었고, 찬송가 오백삼장을 부르며 울었다. 그건 차츰 자라나는 신앙이었다. 가녀린 육신이 마음놓고 의지할 힘이었고 둥지였다. 생명, 살아있음… 스스로를 느끼며 내 안에서 일하시던 그분을 확인하고는 했다.

"이것이 기쁨이군요, 소망이군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아직도 가끔씩 전화 걸어 확인하시는 목사님과 언제나 내 고민을 들어주는 "사랑하는 방법"을 삶으로 보여주는 한 누나와 울적한 날이면 어김없이 전화 걸어 유쾌함으로 다가서는 친구와 기도모임에서 지체로 만난, 말 그대로 나의 지체들인 형제, 자매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主 안에 있음으로 만나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들, 아니 더 정확히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 그래서 언제나 나를 사랑의 빚진 자로 몰아세우는 어쩌면 못된 사람들. 주님은 이들로 하여금 사랑함으로 인해 우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먼저는 받는 사랑에 뭉클해오는 포근함 때문이었고, 그러고는 이젠 주어야 하는 사랑에 무릎끓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간증, 체험… 이는 다름아닌 말씀 한 구절로, 찬송 한 소절에 흘리는 눈물이어야 한다. 계속되는 고백이어야 하고 다윗이 말하는 기다림, 그런 것이어야 한다. 
굵게 내리는 비가 지나간 후, 보이는 하늘의 높음. 높은 하늘. 비 개인 하늘이 무척 아름답다. 

온 땅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스치는 말씀에 또다시 맺히는 눈물. 이는 최고의 예술가이신 그분의 솜씨 때문, 새삼 느끼는 경이로움 때문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기다리나니. 
잊지않기를, 기다림, 눈물. 


1993.7.3. '엔학고레'에 실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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