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바다출판사 등에서 편집주간을 하시다가 2010년부터 알렙출판사를 만들어 주로 인문, 철학 부문의 책을 만드시는 조영남 대표님. 2009년 3월 SBI에서 "책임 편집자를 위한 편집심화" 과정을 들은 적이 있다. 주강사는 민음사의 장은수 대표이셨는데, 마지막 몇 주는 다른 강사에게 맡기셨다. 조영남 대표께는 '편집 실무 워크숍'을 두 주에 걸쳐 배웠던 기억이 있다. 장은수 대표는 조영남 대표를, '내가 가장 신뢰하는 편집자'로 소개하셨다.
장은수 대표의 강의는 소문 대로 현란했다. 강의 내내 감탄하다가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내가 이를 수 없는 경지에, 그가 있었다고나 할까. 그런 강의를 10주간 듣다가 조영남 당시 바다출판사 편집주간님을 뵈었다. 조금은 부끄러워 하시는 듯도 했고, 느릿느릿 전하는 이야기에 조는 수강생들이 제법 있었다.
수강생들도 조영남 대표를 싫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분은 강의 때마다 책을 한 보따리 싸서 오셨고, 한 권 한 권 정성들여 소개하신 후 수강생들에게 나눠주셨다. 수강생들은 환호했다. 나는 수줍게 책 달라고 앞에 나서지 못하다가, 그만 그분이 가져오신 책들이 동이 났다. 그분은 그런 나를 보더니 당신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 나를 주셨다. 당신이 뒤적거리던 책인데, 그래도 괜찮다면 받아달라며 주셨다. <월드체인징>이라는 책이었다. 아주 좋은, 묵직한 책이었다.
난 조영남 대표의 강의가 좋았다. 느릿느릿 했지만 실질적인 내용이 많았고, 완곡한 어법을 구사했지만 집요한 편집자의 결기가 서려 있었다. 당시 나의 강의 노트에 강사 평을 이렇게 요약했다. "수줍은 결기, 편집자".
조영남 대표님과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되었지만, 당시 나의 추억을 내놓지 못한채 그저 그분의 사소한 글에 '좋아요'만 눌렀다. 그런데 오늘, 조영남 대표님이 보내신 선물과 책을 받았다. 알렙출판사의 묵직한 책들과 얼마 전 내가 교보 갔다가 눈여겨 보고 페이스북에 링크시켰던 다른 출판사의 책이 함께 들어 있다. 세심한 배려에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당연하겠지만, 알렙의 책들이 대표님을 닮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결기' 말이다.
책들 사이에 놓여있던 편지를 읽다가 새삼스런 추억이 초록빛으로 돋는다. 답장은 따로 써야겠다. 이미 내게 있는 알렙출판사의 책 <철학자의 서재1><철학자의 서재2>는, 2009년 당시 그가 그러했던 것처럼, 정성스런 소개를 붙여 또다른 이에게 선물해야겠다. 돋보이는 책,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이란 책을 들었다. 주말엔 이 책을 읽을 테다.
'view_ > 책_'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보선과 가오싱젠 (0) | 2013.07.13 |
---|---|
[미생] 회사를 그만 둔다는 것 (1) | 2013.07.09 |
<옥중연서> 읽기 전 단상 (2) | 2013.06.26 |
인노첸티의 <빨간모자>를 통해 본 아동 성폭력 문제(서천석) (0) | 2013.06.14 |
"공부의 삶" 너머 "공부의 길" (1) | 2013.04.09 |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관련 수경 님과 주고받은 글 (0) | 2013.02.23 |
헌책방 "숨어 있는 책"에 가다 (2) | 2013.02.07 |
"당신들의 기독교"로 묻고 "회심의 변질"로 답하다 (0) | 2013.02.06 |
도전하는 정신, 나의 "대장간" (0) | 2013.01.31 |
브레넌 매닝을 다시 읽다 (0) | 2013.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