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142수(link)를 보다 가슴이 조금 아팠다. 퇴사하기 1년 6개월 전, 난 안식월을 시작하며 이직을 '고민'할 것이라고 회사에 말했다. 오란 곳이 두어 군데 있었다. 회사에 먼저 말하고 만나는 것이 좋을 듯했다. 난 그것이 신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안식월 휴가 도중에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조기에 복귀해야 했다. 회사는 어려웠고, 남아야 했다. 그런데 복귀하는 날, 따끔한 질책을 받았다. 내가 다른 회사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단다. 그럴 것 같아 미리 말한 것이었는데.
다시 열심히 일했다. 난 원래 이성보다 감성지수가 높고 이상을 쫓던 사람이었는데, 어느덧 조직에선 꽤나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10년을 보낸 직장이었다. 팀원 두 명이 차례로 퇴사했다. 과정이 좋지 못했고, 난 심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새로운 직원을 뽑고 적응하기까지 그들 몫까지 일했다. 건강이 좋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꼭 만들어야 할 책이 있었다. 그리고 연말까지 버티다가 이젠 정말 떠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사직서를 내던 날, 회사는 갈 곳을 정했냐고 물었고 난 아니라고 했다. '신의'를 생각하여 그랬다고 했으나, 회사는 뭐 그럴 것까지 있냐고 했다. '신의'는 무력했고 난 떠났다.
그만둔 이후에도 오란 곳이 있었으나 선뜻 응할 수 없었다. 난 너무 많이 지쳤고, 가능한 조직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조직에선 '현실적이었고 완벽을 추구했고 책임감이 넘쳤고 헌신적이었다'고 상당한 인정을 받았으나, 정작 나의 삶에는 너무나 게으르고 낭만적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하기까지 했다. 회사를 그만둔 후 6개월은 그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미생>의 '오 차장'을 보며 가슴 아팠던 건, 미련한 나의 인생에 대한 회한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오 차장'으로부터 한 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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