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아니 에르노, 127면)
두 번째, 읽었다. 작은 판형에 129면 밖에 안 되는 책. 처음엔 단숨에 읽었는데, 이번엔 자주 멈춰야 했다. 첫 번째 독서가 세월 넘어 유유히 흐르는 한 남자의 서사에 막막했다면, 오늘은 그 서사를 그저 관찰자 시점으로 응시해야 했던, 그러나 그 남자의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작가의 슬픔에 가슴이 울컥했다.
"기억이 저항한다."(113면)
"난 내 책의 결말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이제는 그것이 다가오고 있음을 안다."(114면)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125면)
아마, 오늘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은 것은, 새벽에 읽었던 진중권의 칼럼 한 구절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득, '남자의 자리', 그곳에 거했던 숱한 존재들, 그러나 그곳에서 다른 존재이고자 했던 나의 허영, 그리고 내가 구축하고 결국 아스라이 사라져갈 비루한 나의 자리가 교차했다. 그것은 그리움이기도 했고, 반성이기도 했고, 성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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