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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서평을 쓰기 위한 준비

Soli_ 2013. 1. 18. 00:17

1. 아니 에르노 


"내게 중요한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썼던 그 단어들을 되찾는 일이다."


등단 초기부터 픽션을 거부한 아니 에르노는 역사적 경험과 개인적 체험을 혼합해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해부해 왔다. 부모의 신분 상승을 그린 <남자의 자리>와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단순한 열정>, <탐닉>), 주변 환경(<외부의 일기>, <바깥세상>), 낙태(<사건>),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한 여자>), 심지어 자신의 유방암 투병(<사진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기억 속에서 집단의 기억을 복원하고, 개인성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인 에르노의 작품은 자전(傳)에 새로운 정의를 부여했다.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들, 법,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책에서


얼마 전부터 난 소설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21면)

(나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과 취향, 그의 생애의 주요 사건들, 나도 함께한 바 있는 그 삶의 모든 객관적 표징을 모아 볼 것이다. 추억을 사적으로 꾸미는 일도, 내 행복에 들떠 그의 삶을 비웃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1936년. 꿈을 꾼 것 같은 기억.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어느 정권을 보게 된 놀라움. 그리고 그걸 간직할 수는 없다는 체념 어린 확신. (*파시즘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1936-38년 사이에 잠시 정권을 잡았던 사회당, 공산당, 각종 노조를 망라한 좌파 대연합 인민 전선에 대한 암시, 45-46면)


나는 이 글을 천천히 쓴다. 일련의 사건들과 선택들 가운데에서 한 생애의 의미 있는 줄기를 드러내려 애쓸 때, 나는 점차로 아버지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46-47면)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어떤 조건의 모든 지표는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47면)


...이런 종류의 시도에서 글쓰기의 행복이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47면)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말과 문장들은 내 아버지가 살았고, 나 또한 살았던 한 세계의 한계와 색채를 있는 그대로 그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어떤 말을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었다. (47-48면)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왠지 좁은 길을 아슬아슬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 회복과 이런 작업에 수반되는 소외에 대한 고발 사이에 낀 좁은 길 말이다. (57면)


간단히 말해서 행복인 동시에 소외이기 때문이다. (57면)


사투리는 내 조부모님의 유일한 언어였다. (66면)


아버지에게 사투리는 뭔가 낡고도 추한 것, 즉 열등함의 표지였다. (66면)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예절 바르게 대하는 모습은 내게는 오랫동안 신비로 남아 있었다. (78면)


이들 세부적인 것들의 의미 규명은 이제 내게 하나의 절대 명령으로 다가오며,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지금껏 그것을 하찮은 것으로 확신하며 억눌러 왔기 때문이다. 모욕당한 기억만이 그것을 간직해 올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욕망에 굴복해 왔던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저 아래 세계의 추억을 마치 뭔가 천박한 것인 양 잊게 만들려고 애쓰는 이 세계의 욕망에 말이다. (79면)


...딸이 자신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던 것이다. (81면)


그는 한 번 자신의 꿈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82면)


그는 푸자드에게 투표했다. 하지만 요술 같은 기적을 한번 기대해 보는 심정이었을 뿐, 큰 확신은 없었다. 그가 느끼기에 푸자드는 너무 <목소리만 큰> 정치가였다.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민족주의, 배외주의적 성향의 포퓰리스트이다. 기성 정치와 제도를 공격하고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희생되는 중소 기업인, 소상인의 이익을 옹호했다., 83면)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필요 없다." (92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할 말이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93면)


이제는 삶을 조금이나마 즐겨 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101면)


아무데서고 마주칠 수 있는 익명의 존재들은 그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힘이나 굴욕의 징표들을 지니고 있었고, 바로 이들에게서 난 아버지의 조건의 잊어버린 실체를 되찾을 수 있었다. (113면)


난 내 책의 결말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114면)


얼마 후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쓸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들을 늦추고 싶다. 그것들이 항상 내 앞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114면)


그렇게 함께 보낸 어느 차분하고도 아름다운 저녁 시간, 그것은 구원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116면)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 (125면)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1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