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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저자와의 만남 후기

Soli_ 2012. 12. 13. 23:30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 저자와의 만남 후기


★아래의 후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글입니다. 간담회 참석간의 긴밀한 유대감을 전제로 한 이야기들은 객관적 용어나 사례를 넘어서는 어떤 지점의 언어가 통용되기 마련이지요(마치 농담처럼). 직/간접 인용처럼 요약한 부분도 저의 언어나 문장이 혼용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1. 화기애애한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교회 언니' 양혜원 선생님, 기획자 이경희 님, 그리고 조희선 목사님이 전체 대화를 이끌었다. 출판사 관계자분을 제외하고 남자는 나와 영특 씨네 아들 이음이가 전부. 여성 연대의 가치를 논하던 시점, 남자로서 조금 난처했음(^^). 밤 10시 가까이 되어 끝남. 

2.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양혜원 선생님께서 자신에게 있어 '여성학'의 의미를 설명한 대목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식이로든 각 사람들에게 '번역'되어 어떤 존재론적 의미가 되어야 한다. 저자에겐 그것이 "여성학"이었다. 

3.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그리고 '주의 종'의 '사모'로서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은 위기에 직면한다. 여성은 결혼하자마자 가부장적 사회 담론에 묻혀 가정의 책임자로 전락하고, 고작 남편의 사회적 지위에 편승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교회는 더하고, '주의 종' 목회자의 아내들은 더욱 심각하다. 헌신된 리더였지만 사모가 되는 순간, 리더의 대열에서 이탈한 예외적 존재가 되어야 했고, 유산과 사산의 극심한 아픔도 (사회와 다를 바 없이) 그저 불미스러운 일로 대하는 교회의 시선은 그 존재감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4. 한 여성의 존재론적 슬픔은, 사실 양혜원 선생님만의 것이 아니다. 숱한 여성들은 그것을 숙명인 양, 소명인 양 감내한다. 허나, 저자는 그 폭력적 담론에 단호하되, 지혜롭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를 위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공부해야 한다. 싸우기 위해선 똑똑해야 하고, 알아야 한다. 합리적 근거를 지혜롭게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뭇 여성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사모의 경우, 교회 안에서 동지를 찾기 힘들다. 독서 모임이건, 이런 모임이건 동지를 찾아 연대해야 한다. 

5. 가장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가장 성숙한 사랑으로 존중하고 대하는 것이다. 

6. 간담회에 주체적 참여자라기보단, 관객으로 참여한 느낌이다. 예지가 옆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남자'로서 대부분 '유구무언'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백소영 교수가 농담처럼 그랬단다. 부부는 합쳐서 200점인데, 여자가 180점이고 남자가 20점이라고. 한국 사회에서 태생적 슈퍼 '갑'의 존재인 남자는 굳이 20점 이상의 남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20점 남자가 50점의 역할을 하면, 마땅히 칭찬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처절히 반성한다. 

7. 사소한 불만 두 가지. 첫째, 그것이 현실이겠으나 '주의 종'이란 단어가 이런 모임에서조차 당연한 듯 통용되는 것. 둘째, 모임 초반 청년시절의 헌신 문제에 대한 긴 대화가 조금 지루했음. 물론 교회 언니'들'의 사려깊은 위로와 통찰이 좋았으나, 애초 이 모임에 대해 기대했던 바가 아니었으므로(물론 중간 이후부턴 매우 흡족).  

8. 아내는 칠 남매 중 여섯 째로 태어났다. 동생은 남동생. 첫째아이 예지가 태어났을 때, 장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장모님께서 그러셨다. "미안하네. 아들이 아니라서." 화가 났지만, 장모님도 어찌할 수 없는 이 나라 그 세대 여성의 숙명에 충실했을 것이다. 아내는 여성으로서 맺힌 게 많지만, 여전히 180점 아내로 살려고 한다. 

9. 예지를 데려갔다. 책을 한 권 더 사서 예지의 이름으로 저자에게 사인을 받았다. 예지가 커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방금 전 저자께서 나의 페북에 덧글을 다셨다. "예지 넘 이뻐요. 예지 크면 제 책 읽히겠다고 하셨지만, 제 솔직한 심정은 예지가 컸을 때는 제 책을 읽을 일이 없을만큼 세상이 달라졌으면 하는 거예요.^^" 진심으로 그런 세상에서 예지가 여성으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남성'으로서 노력하련다.  

10. 다음은 간담회 중 페이스북에 올린 단문들. 

_저자 양혜원, 기획자 이경희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여성의 슬픔을 제대로 해석해 내지 못한 한국교회의 현실이 이 책을 가능케 했음을 본다. 한국교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나저나 관계자 외 남자는 나와 다섯 살 이음이 뿐. 

_유산 문제, 우리 문화는 그것을 기껏 불미스런 일 정도로 취급한다. 하지만 적어도 교회라면 그것에 대한 바른 해석과 대응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_참가자 한 분이 말하길, 얘기를 듣다보니 공감도 되고 억장도 무너진다고 토로. 나름 페미니스트 남자라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이들의 고백과 성토의 맥락을 이해는 하겠으나 '공감'하는 능력은 심히 떨어진다. 이것이 나의 한계.

_양혜원, "교회 다니는 사람, 생각보다 착하지 않다." (이건 진심 공감!) "사람들은 타인의 어떤 기능을 자기 유익을 위해 기꺼이 이용한다. 보통, 그때 우리는 '아쉬움의 전략'을 사용한다."

_하나님의 인도, 헌신 등의 교회 안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교리나 이성적 해석이 아니라 인생의 지극한 경륜에서 비롯한, 아픔에 대한 해석이 절실하다.

_양혜원, "중요한 건, 나를 가장 성숙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_조희선, "하나님은 억압하는 분이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자유 속에 하나님의 진심이 있다."

_"나를 타율적 존재로 만드는 새벽기도, 철야 기도회 너무 싫다.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며 성찰도 하고 땡깡도 부려야 하는 것 아닌가?", 조희선 목사님 말씀.ㅋ

_양혜원,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나에게 그것은 여성학이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름의 번역 '툴'이 필요하다."

_주의 종(?)과 결혼한 신혼 자매에게, "남편과 지혜롭게 잘 싸워라. 가정의 문제는 왜 여성만 책임져야 하는가? 여성의 몫, 인생, 존재를 쟁취하고 사수하라. 하여 여성들은 공부해야 한다."

_뭇 여성과의 연대를 권면하는 양혜원 선생님과 눈이 마주침. 이런! 뻘줌한 '남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