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_

김은호 교수님께

Soli_ 2003. 10. 16. 21:48

김은호 교수님께, 


요즘 '촘스키'를 읽었습니다.  '언어본능.상,하'
그리고 촘스키에 관해 쓴, '촘스키, 끝없는 도전'(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드니 로베르 외)라는 책입니다.
 
그는 히브리어를 시작으로 모든 언어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본능적 실체를
논증하던 지식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심리학, 철학, 정치학을 꿰뚫는 석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그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 진리를 향하도록
노력하고 고민하며 저항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로버트 바스키는 촘스키를 마무리하며 그를, '보통사람들의 수호자'라고 칭합니다.
촘스키가 추구하는 지식인의 길, 그가 말하는 진리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라는 점에서는
많은 이견이 있습니다. 많은 비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적들이 있습니다.
'종교'를 향한 그의 냉정한 평가와 비평은, 제가 가진 신앙적 양심을 심하게 거스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그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고민하며 저항하며 투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그런 촘스키가 제 삶에, 제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습니다.
'나는 무엇을 살아야하는가? 내가 붙잡고 있는 그 진리를 향한 나의 발걸음은
어디쯤 머무르고 있는 것인가?'
 
학교를 그만두고... 한 달정도, 구의동 우편물류센타에서 일했었습니다.
하루 12시간, 저녁 9시에 들어가 다음날 아침 9시까지 '노가다'를 했습니다.
 
돈을 버는 것...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내 삶을 향한 치열함. 하나님 주신 복음에 대한 대가를 치루는 일...
내게 있어 필요한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학위도 중요하고, 공부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 잘 압니다.
목회자가 되는 것도 소중하고, 그 과정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도 내게 필요한
헌신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그것을 조금 미루고 싶습니다.
꾸중하시는 분들, 충고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그것을 잠시 미루어두고 싶습니다.
 
10월부터 IVP에서 일하고 있씁니다.
주로 하는 일은 캠퍼스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문서운동과 Books(직영서점) 운영입니다.
페이도 얼마 안되지만... 1년정도 이곳에 머무를 생각입니다.
 
1년 정도...
 
레리 크랩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인하여 무엇을 얻을 것인가? 그분을 인하여 나의 존재가치를 높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오직 그분으로 기뻐할 수 있는가?
오직 그분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시 허락하시면,
내년 연말 즈음에 다시 신학을 시작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교수님,
 
솔직히 교수님을 찾아 뵐 면목이 없습니다. 부끄러운 제자의 송구스러움...
학교를 그만두며 교수님께 제일 죄송했습니다.
교수님.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11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을입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건강조심하시고.
 
언젠가는 꼭 교수님 곁에서, 교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받은 '스승의 은혜'를 그렇게나마 조금이라도 갚아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교수님이 허락하시면 말이죠.^^
 
늘 평안하시길 기도하며.
 
2003.10.16  진형 드림.
 
 
 
_그리고 2006.10.1에 덧붙임
  
일년이 훨씬 넘었는데, 난 아직도 이곳에 머물러 있다. 얼마있으면 만 삼년이 된다.
오늘 저녁 아내와 산책하며 무뎌진 우리의 신앙에 대해 나누다 문득, 오래 전에 교수님께
보냈던 메일이 생각나 찾아보았다. 곧 있으면 찾아뵐 교수님께 드릴 답변을 준비해야 하는데,
메일을 다시 꺼내어보니 가슴이 도리어 막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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