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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명의 여지없이 충분히 부유하므로 (CTK, 130110)

Soli_ 2013. 1.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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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변명의 여지없이 충분히 부유하므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크레이그 블롬버그 지음|박규태 옮김|IVP|2012)



영국 IVP의 NSBT(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시리즈 중 첫 번째로 한국에 선보이는 책이다. 이 시리즈는 성경신학의 토대 위에서 철저한 학문적 탐구를 통해 성경의 다양한 관심을 여러 흥미로운 주제들로 풀어낸 수작들로 채워져 있다.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해에 출간된, 같은 주제의, 한국인 저자의 책이 있다. 두 책 모두 재물 소유의 문제를 성경을 통해 철저히 고찰하며 어떤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크레이그 블룸버그의 책을 읽으며, 돌연 그 책의 아쉬움이 도드라졌다. 철저한 성경신학적 주해란 부분이 그렇고, 처음 의욕과는 달리 오래된 청교도적 결론에 머무른 그 책에 비해, 이 책은 로널드 사이더의 급진적 대안과 상당부분 조우하는, 보다 진일보한 대안들이 매력적이다. 그 한국인 저자에겐 미안하지만(한국인 독자로서도 아쉽다!), D. A. 카슨의 추천 대로 “이 책은 부와 가난을 다룬 책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


1장과 2장은 “재물 소유의 신학과 가장 관련성이 큰 구약 성경의 배경”을 다루며, 3장은 신구약 중간기, 4-7장은 신약 성경에 기록된 소유의 가르침을 추적한다. 당신이 목회자, 혹은 신학도라면 저자와 함께 1장부터 7장까지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소유의 신학을 정립할 것을 권한다. 모름지기 주해란 이런 것이다! 명료한 문장 속에 깊이 스민 각주와 40여 쪽에 이르는 참고 문헌도 꼼꼼히 검토하라. 성경 전체를, 이렇게 쉽고 명료하게 훑을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8장의 결론 부분도 매우 유익하다. 성경 전체를 주해했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결론과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개인적 차원과 공동체적 차원에서 구체적인 연보의 실천을 강조한다. 우리는 변명의 여지없이 충분히 부유하므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라고 기도했던 잠언 저자처럼, 더 많이 베풀기를 기도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편 저자의 결론은 아쉽기도 하다. 어찌하여 그의 적용점은 “개인과 교회의 행동 수준”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일까? 그 이유는 “신약 성경에는 사회의 구조적 악을 치료하기 위해 그 구조를 바꾸어 버리라는 과격한 권면은 거의 나오지 않기”(366면) 때문이란다. 저자는 소유의 신학을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 순서대로 진화하고 있다는 전제를 가졌다(35면). 그래서 모세의 율법에 담긴 ‘과격한 권면’은 시가서와 지혜서를 통해 “심판의 날 그리고 내세의 날”이 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358면), 기어코 현실에서는 채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실현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구조적 불의’와의 싸움은 마땅히 우리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아니겠는가? 


좋은 번역과 풍부하고 친절한 각주와 참고 문헌, 색인, 그리고 사려 깊은 한국어판 서문 등 잘 만든 책이다. 다만 책의 메시지에 비해 너무 암울한 표지(그 언젠가 출몰했다가 사라진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가 연상된다)(물론 NSBT 시리즈 모두를 번역 출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카슨의 시리즈 서문이 생략된 것은 아쉽다. 모쪼록 이 책이 번영신학에 물든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헛된 야욕을 회심케 하고, 가난한 이들의 절박한 필요에 구체적으로 응답하는데 일조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