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CTK_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박총의 <밀월일기> 외)

Soli_ 2008. 6. 22. 00:29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08년 7월호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_박총의 <밀월일기>(복있는사람, 2008)

_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1997)

 

김진형 (IVP 문서사역부장)

 

+1164. 내 핸드폰에 나날이 업데이트 되는 이 숫자는, 아내와 결혼의 언약을 맺은 이후 지금까지 이른 날들에 대한 헤아림이다. 결혼의 언약을 가슴에 새기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살아온 날들이 그냥 잊혀지도록 방관할 수 없음은, 우리가 함께한 날들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 때문이다. 함께 간직하는 우리만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 사랑이 어제보다 더한 깊이를 갖게 해주고 그만큼 다져진 확신으로 서로를 향하게 한다. 물론 일상의 지난(持難)함에 지쳐, 마치 우리 사랑이 더불어 시들어간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 우리와 같은 사랑을 고백했고 그 고백한 대로 살아갔던 이들을 벗 삼아,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은 좀더 힘을 내고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사랑은 우리 존재를 충만하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치는 온갖 사소한 것들과 갖가지 인연의 사람들, 매일 반복되는 듯한 일상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주고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게 한다. 사랑을 위한 그 어떠한 수고로움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더군다나 결혼의 언약을 담보한(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죽음을 담보로 한 사랑이었다) 이들에게, 사랑은 최고의 열정으로 표현되어야 할 일상이어야 한다.


수년 전에 한 월간지에 연재되던 박총의 <밀월일기>가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연재되던 그의 일기를 읽으며 젖어 들던 행복한 미소, 그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은 그때 그대로이다. 다시 엮어낸 단행본이어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것 아닌가 했던 노파심은 제껴 놓아도 좋을 듯 하다. 충만한 열정, 충만한 사랑은 언제 다시 꺼내어보아도 좋다. 물론 섬세하면서도 반짝 반짝거리는 박총 다운 언어의 매력 역시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부부에게 또는 연인에게, 사랑은 곧 그대이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게 있어 사랑은 곧 그대이다. 그래서 사랑이란 단어는, 사랑하는 그들이 서로간에 표현하는 만큼, 애쓰는 만큼, 섬기는 만큼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책을 읽으며 내내 감탄하는 것은, 이들 부부가 표현해내는 갖가지 사랑 때문이다. 물론 이들도 가끔 싸우기도 한다. 어느 날 다툼 끝에, 옳고 그름을 따져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달은 남편이 ‘안해’(저자가 아내를 부르는 호칭. ‘집안의 해 같은 사람’이란 뜻이란다)가 좋아하는 도넛을 사고자 전철을 타면서, “나란 존재는 안해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남편에게 사랑이 곧 그 아내일 때, 그 싸움마저도 사랑에 이르고야 마는 숙명을 지닌다.


솔직히 박총의 일기는 낯간지럽고 유치한 구석이 있다. 그가 머리글에 경고한 대로, 결혼한 남자들의 ‘공공의 적’이 될만한 충분한 위험성(?)이 곳곳에 가득하며, 이 책을 악용할 경우 ‘애정 전선의 먹구름이나 일시적 가정 불화’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제 갓 '천백육십여 일'을 함께 산 아내와 함께 이 책을 읽을 것이며, 올 가을에 결혼하는 내 아끼는 후배에게도 이 책을 선물할 것이다. 그들의 '밀월일기'는 위험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까닭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 내지는 교과서적인 안내서들은 많이 있지만, 그 책들이 말하고자 하는 원리들이나 가치들을 실제로 살아낸 이야기들은 드물다. 이 책이 가지는 최고의 강점은 바로 그것이다. 지고 지순한 사랑, 마땅히 우리가 누려야 할 그 사랑의 충만함으로, 그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좀더 분발하여 그 충만함에 이르도록 우리를 한껏 자극한다는 것이다.


“안해가 특별히 미인도 아니고 용모를 예쁘게 꾸미지도 못하지만 이것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항상 예뻐 보이는 사람이 아닌, 때로는 어여뻐 보이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외모에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 추억의 팝송 ‘You are so beautiful to me’를 제가 각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to me’라는 구절 때문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이든지 간에 저한테만은 저희 안해의 아름다움에 속으로 깜짝깜짝 놀랄 수 있는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기를 빌어봅니다.”(235-236페이지)


박총 부부의 밀월일기를 통해, 오늘 우리가 누려야 할 사랑의 충만함을 마음껏 직시할 수 있다면, 니어링 부부를 통해서는 더불어 간직해야 할 가치, 우리 사랑을 더욱 굳건히 하여 붙잡아야 할 이상, 우리 열정을 다하여 헌신할만한 꿈이 있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사랑은 서로의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도 만들지만, 더불어 무엇인가를 향한 시선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이 기록한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는 그들 부부가 평생 살아온 감동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스물 넷이었던 헬렌은 그보다 스물 한살이 많던 스콧 니어링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감정에 휩쓸린 철없던 사랑이 아닌, 당시 시대의 주류였던 산업 자본체제가 가진 야만적 폭력에 온 몸으로 저항하던 스콧 니어링의 삶과 정신에 한껏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하나가 되어 지켜내던 가치들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농장을 일구며 평생을 살았다. 그들은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살았는데, 이런 것들이었다.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의 절반쯤은 자급 자족하자, 그 해 먹고 살기 충분한 양식을 모으고 나면 돈 벌 일을 삼가자, 되도록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일을 해내고, 집 짐승을 기르지 말고, 집을 멋지게 고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등등. 삶의 방식은 곧 삶의 원칙에서 비롯된다. 사랑은 한편, 서로간의 생활 습관이나 양식, 원칙들을 더불어 함께 세워나가는 것이다. 헬렌은 남편 스콧이 죽은 후,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우리는 50년 동안 사랑과 동지애 속에서 같이 살아왔습니다. 결혼 생활은 결코 그 사랑의 본질이 아닌 듯 합니다. 우리는 관심과 목표와 행동이 일치하는 두 사람으로서 함께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면서 또한 함께 해온 많은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 우리는 어떤 신비로운 작용으로 평등하게 되었고, 우리는 하나의 삶을 살았습니다. 감사드려요, 그리고 영원히 당신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냅니다.”(239페이지)


박총 부부처럼 한결 같은 언어에 충만한 사랑을 담아 서로를 뜨겁게 보듬을 수 있다면, 그리고 니어링 부부처럼 평생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몸짓으로 헌신하며 살아낼 수 있다면, 오늘 우리의 사랑이 또 얼마만큼이나 아름다울지, 그것을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설렘, 숨이 가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