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CTK_

순례, ‘공중의 새를 보며’ 걷는 하루하루의 일생 (CTK, 130510)

Soli_ 2013. 6. 7. 07:10

크리스채너티투데이 한국판(CTK) 2013년 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link)

★원고가 길어서 잡지에는 조금 덜어냈습니다. 블로그엔 전문을 싣습니다. 




순례, ‘공중의 새를 보며’ 걷는 하루하루의 일생

<길 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찰스 포스터 지음윤종석 옮김IVP 펴냄2013년 4월)






먼 훗날, 아니 흐늘거리던 저녁노을 끝자락 감은빛 하늘이 곧 펼쳐질 지금 이 순간 내 생을 마친다면, 주께서 내가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그 무엇이 아니라, 내가 걷던 길가에서 흘린 땀방울과 눈물 한 자락을 더 칭찬하고 위로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하여, 무언가를 이룬 그때가 아니라,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 걷는 그 순간에 나의 최후를 맞길 바란다. 진정한 삶의 의미란, 그저 목표에 도달하는 것 혹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그것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야 비로소 믿음과 불신, 확신과 의심, 영혼과 육체, 내면과 외부세계, 천국과 세상 사이에서 바특이 존재하는 순례자의 영성을 우리는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영성의 보화’ 시리즈는 오랜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영성 훈련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오늘날의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를 위한 적용점을 제시하는 기획물이다. 기도, 안식, 십일조, 금식, 절기, 성찬 등의 주제에 이어 이 책은 이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순례’를 다룬다(하지만 한국에선 ‘절기 준수’를 다루는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 <The Liturgical Year>가 빠지고 마지막 주제인 이 책이 일곱 번째로 출간되었다. 순서가 바뀌어 출간되는 것은 괜찮지만, 시리즈 중 한 권을 누락한다면 독자로서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시리즈 편집자인 필리스 티클은 ‘순례’라는 주제가 일곱 주제 중에서 가장 조심스럽고도 위험한 주제라고 경고한다. 그 이유는 “여태껏 알던 진리들은 순례 도중에 아예 죽거나 아니면 오히려 시퍼렇게 되살아나 단단한 인식과 거룩한 애정이 되어 삶의 모든 부분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순례는 우리의 모든 확신을 ‘완전히 불확실하게’ 만든다. 


“예수는 뭔가에 사로잡히신 사람, 단 하나의 메시지밖에 없는 사람이시다.” 그분은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 다니시며 숱한 민중을 만나 천국을 설파하셨지만, 핵심은 단순했다. “나를 따르라”라는 것이다. 사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모든 확신을 불확실한 것들로 대체하는 것이다. 순례는, 삶을 지탱하던 온갖 환상을 극복하며 “공중의 새를 보며” 걷는 하루하루의 일생이다.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나의 실존에 닿고자 숱한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것이다.  


한편 순례의 전통은 여타의 종교에서도 발견되는 종교적 행위다. 그런 면에서 순례는 확실히 종교적이다. 다만 기독교 전통에서의 차별점은 두 가지다. 첫째,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여정 자체이지 도착이 아니다. 둘째, 대체로 그리스도인들은 훨씬 더 재미있게 순례를 즐긴다. 무엇보다 순례의 유익한 점은, 순례를 통해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분리하고 육적인 것들을 폄훼하는, ‘최강의 이단’ 영지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제대로 하기만 하면 순례야말로 영지주의를 물리치는 가장 잘 알려진 해독제 중 하나”이며, “순례자들이 영지주의를 짓밟는다면 그것이 곧 기독교의 순례”가 될 것이다.  


어떤 책은 완벽한 답변으로 단 하나의 의심의 여지도 봉쇄하지만, 어떤 책은 다소 허술한 비약을 일삼지만 마음을 충동하여 끝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한다. 난, 답변을 주는 책보다 질문을 주는 책이, 안주하기 보다는 무언가를 향해 추동하는 책이 ‘옳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좋은 책인 동시에 확실히 위험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