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빛과소금_ 8

광장 어디선가 너를 만났으면 좋겠다

〈빛과소금〉 2016년 1월호 '미안해, 하지 못한 말' 광장 어디선가 너를 만났으면 좋겠다 열다섯, 혹은 스물아홉 현지에게 내가 목회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스물아홉 신학대학원생이었고, 너는 열다섯 중학생이었다. 나는 청년부와 중등부 담당 전도사로 일하고 있었고, 너는 나의 제자였다. 교회 청년들과 보냈던 광장의 기억들이 아직도 선연하다. 뜨겁던 6월에는 우리나라에서 펼쳐졌던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였고, 찬바람이 불어오던 가을 끝 무렵에는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효순, 미선이를 위해 촛불을 들었다. 촛불을 들면서, 나는 너희들을 생각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효순이와 미선이는 미군 제2사단 공병대대 44공병대 소속 장갑차에 압사당하며 참혹하게 죽었다. 미군은 아이들의 확실..

엄혹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빛과소금, 131112)

빛과소금 2013년 12월호 엄혹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결코 비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스무 살 예지에게,[각주:1] 1979년 4월 3일, 아버지가 암으로 소천(召天)하셨습니다. 저의 아버지, 그대의 할아버지였지요. 저의 나이가 여섯 살이었으니, 지금의 그대보다 한 살 어렸을 때입니다. 아버지가 투병하시던 그즈음, 집에는 친척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어머니는 종종 소리 내어 우는 누나를 달래곤 하셨지요. 전 아버지의 냄새가, 가래 끓는 소리로 탁하게 갈라진 낮고 굵은 목소리가 싫었습니다. 담배 냄새 절은 삼촌들이 얼굴을 비비대는 것도 싫었습니다. 집 앞 골목에서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비명처럼 들렸습니다. 뭔지 모를 해방감에 잠시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그대, 행복이란 신화 너머 좋은 삶을 사십시오 (빛과소금, 131009)

★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그대, 행복이란 신화 너머 좋은 삶을 사십시오 스무 살 예지에게, 무지개 ‘예(霓)’, 이르다 ‘지(至)’. 우리는 그대를 “예지”라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의 이름에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있듯이, “예지”란 이름은 우리의 소망이자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물로 벌하신 후, 노아와 무지개 언약을 맺으셨지요. 모든 불신앙과 절망, 공포, 죄악을 이겨내고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이들에게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러하시죠. 늘 먼저 찾으셨지만 되려 버림 받으셨고, 외면 받으시면..

그대의 청춘을 응원합니다 (빛과소금, 130910)

★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그대의 청춘을 응원합니다 스무 살 예지에게, 어렸을 적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삼 남매를 힘겹게 키우셨습니다. 집은 점점 작아지고 좁아졌으며, 마침내 여름이면 푸른 곰팡이가 피던 반지하 집에 살 즈음부터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시기 시작했습니다(어쩌면 그전부터 그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린 저의 기억엔 ‘그때’의 슬픔이 하나의 정지된 화면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푸른 곰팡이가 아니라, 한때 푸른 잔디밭 마당을 가진 집에 살았다는 자부심으로 버텼지만, 좌절은 곧이어 엄습했습니다. 좋은 선생님도 만났지만, 어떤 선생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빛나는 모험에 대하여 (빛과소금, 130805)

★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사랑이라는 빛나는 모험에 대하여 스무 살 예지에게, 오로지 ‘함께’가 아니면 의미 없음을 깨닫는 순간, 그녀와 결혼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녀는 ‘남자’에 대한 존재론적 회의를 가지고 있었고, 저는 ‘다른 존재’와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꽤나 구체적인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선 저의 두려움만 얘기하지요.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가난의 숙명을 온몸으로 익혔던 까닭에 다른 누군가와 더불어 공동의 운명을 모색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의 인생만으로도 벅찼으니까요. 함께하여 얻을 수 있는 유익도 꽤나 매력적인 것이었지만, 만약 그..

그대, 희망의 길벗이 되십시오 (빛과소금, 130707)

★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그대, 희망의 길벗이 되십시오 스무 살 예지에게, 오직 가진 것이라곤 상상력뿐인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깨닫기 전부터 이미 고아였던 아이, 부모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타고난 아이,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의 고독과 고단함을 알아버린 아이… 그 때문이었을까요? 아이는, 스쳐 지나는 보잘것없는 사물과 풍경 하나하나에 이름을 부여하고 상상을 덧붙여 온갖 희망을 재잘거립니다. 그 재잘거림에 어떤 사람들은 좀 모자란 아이로 여기기도 하고, 또 어떤 어른은 고아라서 그런다고 윽박지르기도 합니다. 고아인 그 아이는, 못생기고 주근깨 투성인 데다가 머리마..

"하루는 귀한 일생입니다" (빛과소금, 130605)

★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앞으로 우정, 사랑, 상처, 교회, 공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쓸 예정입니다. "하루는 귀한 일생입니다" 스무 살 예지에게, 몇 해 전, 아내에게 장미선인장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조금씩 시들더니 목숨을 다했지요. 아니, 그렇게 보였어요. 그런데 올해 봄이 시작하던 즈음, 아내가 베란다 창틀에서 새끼손가락 손톱 만한 장미선인장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장미선인장 화분이 놓여 있던 자리, 어미에게서 떨궈진 생명이었을 것입니다. 일 년 넘게, 겨우내 겨울바람에 맞서 살아난 생명이었습니다. 아내가 조그마한 유리 찻잔에..

또박또박 쓴 나의 진심 (빛과소금, 130409)

★빛과소금 5월호에 기고한 글이며, "거듭난 남자, 아내의 자리를 생각하다"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또박또박 쓴 나의 진심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남성에게 억압과 폭행을 당해온 시절에도 먹이를 찾아 아이를 양육하며 가정을 이끌고 삶을 이어오면서 평화를 지킨 중심이었습니다. 평화를 지키려는 본성을 아직도 많이 가진 존재가 여성이죠. 그 여성이 남성에게 군국주의적, 산업적 탐욕을 멈추라고 명령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로버트 서먼이 안희경과의 대담에서 한 이야기다(, 76쪽). 평화의 근원은 늘 여성의 자리였다. 남자는 탐하고 모략하고 침탈하지만, 결국엔 여성의 품을 그리워하고 굴복한다. 어머니의 자리, 아내의 자리에서야 그 깊은 안식을 누린다. 언젠가 여성의 시대가 도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