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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뭇한 어른들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고향' 같은 책 (CTK, 0313)

Soli_ 2013. 4. 3. 23:53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한국판 2013년 4월호



거뭇한 어른들도 소중히 간직해야 할 ‘고향’ 같은 책

[서평]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이현주│작은것이아름답다│2009)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처음부터 없었다.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두 분은 돌아가셨다. 그래서 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도 여름방학이면 삼촌과 이모들이 계신 시골집에 갔으나, 친구들은 할아버지가 계신 고향으로 갔다. 시골집과 고향의 차이, 아마 내가 부러웠던 건 그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껜 차마 말 못할 것도 투정하며 고백할 수 있는, 어른 비슷한 부담스런 거뭇한 존재가 되어서도 기꺼이 달려가 그 품에 안길 수 있는 ‘할부지’에 대한 동경. 나에겐 그런 ‘고향’이 없었다. 


그런 까닭일까. 난 아주 바른 사내로 자랐다. 보기 드문 예의를 갖췄고, 언제나 모범생이었다. 나의 삶에 일탈은 스무 살 넘어 어머니와 상의 없이 대학을 그만 두던 때가 처음이었다. 늘 정답에 집착했던 내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차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가신 길, 그리고 우리더러 품으라 하신 꿈을 마주하면서 나의 현실은 좌표를 잃고 방황했다. 간혹 질문을 던지면, 교회의 어른들은 복음은 복음대로 품되, 현실은 현실대로 살라 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지혜가 아닌, 현실에 압도당한 복음, 그 난처한 위선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첫 일탈은, 학교를 그만 두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 다니기도 멈췄다. 물론 잠시 한때였지만. 


할아버지 이현주는 그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는 지혜를 선사한다. 나의 일곱 살 딸의 취미가 질문이다. 한참 인내하며 답하다가도 때가 되면, ‘그만 자자’ 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도리어 질문하는 아이를 이렇게 칭찬한다. 


“내가 보기에 넌 참 바람직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래,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렴. 그것이 너를 훌륭한 사람으로 이끌 테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그가 찾은 ‘대답’이 아니라 그의 가슴에 묻혀 있는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해.”(41-42쪽)


‘나무 58그루’를 살려 만든 작은책이다.[각주:1] 숱한 생명들이 덧없는 욕망을 부추기는 쓰잘 데 없는 책들에 희생당하는 요즈음, 100퍼센트 재생지로 만든 이 책은 최고의 가치를 선사한다. 정말 좋은 책이다. ‘나-너-우리’의 세 지평 위에, 아이의 질문과 할아버지의 답장으로 쓰여진 값진 지혜들이 두런두런 더 좋은 세상을 꿈꾼다. 아이가 되기엔 너무 늦어버린 나 같은 거뭇한 어른들에게도, 곁에 두고 간직해야 할 ‘고향’ 같은 책이다.   






  1. 100퍼센트 재생지로 만들어 천연펄프 종이책과 비교할 때 나무 58그루를 살려 만든 책이라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