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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시대'를 의연하고 우아하게 사는 법

Soli_ 2013. 6. 29. 23:19


'가난의 시대'를 의연하고 우아하게 사는 법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김인순 옮김필로소픽 펴냄2013년)



강준만 교수는 갑을관계의 역사가 조선 시대 관존민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고찰하며, 그 역사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슬로건으로 대변된다고 말했다. ‘을’은 군림하는 ‘갑’의 비위를 맞추며 호시탐탐 ‘갑’의 자리를 탐하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갑’은 신자유주의의 동력을 돋구며 더욱 야멸찬 승자독식사회를 굳건히 한다. “88만원 세대”라는 조어는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고 있으며, IMF 이후 중장년들은 언제 물러날지 모를 직장을 조바심 내며 사수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그런데,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니, ‘우아하게 가난을 과시하면서 쿨하게 부자들을 경멸하는 법’이라는 저자의 도발은 자못 불온하고도 생뚱맞다.      

 

쇤부르크는 독일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의 언론인이다. 몰락한 귀족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부유한 친척의 집에서 가난한 식객으로 지내면서 부끄러운 가난과 뻔뻔한 부의 세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처세의 이치를 익혔다. 이 책은, 언론인으로 일하던 저자가 경제 불황이 휘몰아친 2002년 구조조정으로 실직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의연하게 대처한다. ‘국민의 5분의 4에게 복지를 약속하는’ 나라에서 주는 적지 않은 실업보험금을 받았지만, 그것마저 중도에 포기하고 기꺼이 가난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풍요의 시대는 완전히 지나갔다. 하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되 근거 없는 신화는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가난이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끊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주입시킨 자본주의 신화는 근거 없는 것이다. 출세 의지는 좌절당하고,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며, 패자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 시대를 산다. 무엇보다 가난을 자본주의의 비극적 종말을 예견하는 역사적 차원의 대세로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돈 없이도 풍족하게 살 수 있는 법,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을 설득력 있게 제안한다. 무엇보다 진짜 가난은 마음의 문제다. 하여 “너희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듯 소유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인용하며, “내가 가진 것을 토대로 부유하게 느끼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때문에 항상 가난하게 느끼는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집, 외식, 문화생활, 건강과 몸매 관리, 자동차, 여행, 매스미디어, 자녀 교육 등 실질적인 삶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구체적으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비결을 소개한다. 저자의 의연함은 돌온한 센스로 발휘되며, 인간 심리 깊은 곳의 두려움과 위선을 파헤친다. 무엇보다 저자의 위트는 발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