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서재》(2016) '인문, 공부와 글쓰기' 기획자 편에 실은 글입니다.
인문정신은 스스로 길을 만든다
인문 공부와 삶을 다룬 책의 흐름에 대해
김진형_생각의힘 편집장
십수 년째 책을 만들고 있다. 가끔 책이 벽돌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행동하는 삶(vita active)과 성찰하는 삶(vita contemplative)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사유의 책을 소망하며 산다.
도대체 인문학이라니
원고 청탁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하버드 학생들은 더 이상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사회평론, 2015)였다. “21세기에 인문학만 공부해서는 답이 없다” “우리나라만 문제인 줄 알았더니 하버드까지? 충격적이다” 등 온라인서점에 달린 몇몇 독자 단평에는, 인문학으론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현재와 미래의 세상에 대한 비장(悲壯)과 비관(悲觀)의 심정이 엿보인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도대체 인문학이라니! 과연 이 책의 저자 파리드 자카리아는 현재 미국에서 손꼽히는 외교정책 전문가로 국제정세와 세계의 흐름에 능통한 저널리스트답다. 컴퓨터와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의 도래를 직면한 현재, 뭄바이에서 예일대학교까지 급변하는 지식 지형을 목격하며, 저자는 다음과 같이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잠시, 우리는 이 책의 원제를 정색하며 살필 필요가 있다. 《In Defense of a Liberal Education》, 즉 ‘교양교육의 방어’다. 이 책은 교양교육의 핵심인 말하기, 생각하기, 글쓰기를 강조하며 급변하는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 오히려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다시 인문학’ 말이다.
인문‘학’과 인문‘삶’의 사이
인문학의 위기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1996년 11월 국공립대학 인문대 학장들은 “이성 회복과 학문의 기반이 되는 인문학이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인문학 제주 선언’을 발표했다. 2001년에는 국공립대 인문대학협의회가 인문학의 붕괴를 경고하며 ‘2001 인문학 선언’을, 2006년 9월에는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 타개를 위한 ‘인문학 선언문’을, 뒤이어 80여개 대학의 인문대 학장들이 제도적 지원을 촉구하며 ‘오늘의 인문학을 위한 우리의 제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2년 10월 문학·사학·철학 분야의 주요 학회들은 한국인문학총연합회를 창립하며 ‘인문학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 선언문도 이전에 발표된 여러 선언문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대학에선 인문학의 위기로 인한 비명과 선언이 이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인문학의 기초 학문을 다루는 주요 학과가 통폐합되는 구조조정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에서의 인문학의 추락은, 대학의 몰락과 맞닿아 있다. 대학은 더 이상 지식공동체가 아니다. 지식과 공공성에 대한 가치를 경쟁과 취업의 수단으로 겁박하며, 지식으로 수익사업을 하는 기업으로 전락했다. 이제 교양지식은 면접을 위한 상식이고, 글쓰기는 자기소개서를 위한 기술이며, 졸업생의 취업률은 대학의 상품성을 가늠하는 가장 강력한 지표다.
2010년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 씨는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라며 대자보를 쓰고 자퇴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인문학인가?”라고 물으며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지성은 고전과 문자에 박힌 지식만이 아니다. 자기 앞에 닥친 실제적인 문제와 삶의 현장과 노동현장과 자연과 영혼과 수많은 낯선 관계에서 길을 찾아 살아내는 ‘삶의 지혜’”(김예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느린걸음, 2010)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학의 몰락과 맞물려 새로운 지식공동체들이 ‘대학 밖’에서 인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수유너머’ ‘가장자리’ ‘장미와 주판’ ‘감이당’ ‘급진 민주주의 연구모임 데모스’ ‘인문학협동조합’ ‘시민행성’ 등의 지식공동체는 제도권 교육 밖에서 인문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인문 출판의 흐름을 말하기 위해 지루한 서설을 늘어놓은 것은, 출판은 시대의 반영이라는 전제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강조해야겠다. 책은 시간을 거슬러 오래 간직하는 텍스트이어야 하고, 출판의 소명은 현재의 물음으로부터 과거를 소환하고 미래로 확장하는 것이므로, 이 질문도 여기에 넣어야겠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다.
인문학(humanities)은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비롯되었다. 후마니타스는 사람의 사람다움을 해명하는 ‘문사철’(文史哲)의 학문이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실용의 기술이 아니라, 나와 타자, 세상이란 존재, 그리고 그 존재들 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인문학은 당장의 필요에는 대체로 무용하지만, 무력한 현실 앞에 좌절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절실하다. 다시 존재로,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 존재는 소생하고 삶은 다시 시작되니까. “참된 공부란 진리를 향해 자신의 존재를 활짝 여는 것, 진리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멀리하는 것,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구하는 것이다.”(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공부하는 삶》, 유유, 2013)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절정에 대한 추억
앞서 언급한 인문학의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는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가 유입되고 고착되던 시기와 맞물린다. 즉 1997년의 국가부도 위기와 IMF 구제금융 이후,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비정규직 양산,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 추구,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부터다. 효용의 잣대로는 인문의 가치를 구현하기 힘든 까닭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는 ‘2000년대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절정’이기도 했다. 홍세화, 한홍구, 박노자, 정운영, 고종석, 강준만, 유시민 등 걸출한 지식인이 등장했다. 작고한 출판평론가 최성일은 다음과 같이 썼다. “이 2000년대판 인문사회과학서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20대와 30대의 비판적 성향의 독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지만, 1980년대의 ‘의식화 교재’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 책들은 일반 교양서적에 가깝다. 또한 저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다채로워 우파에서 좌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펼쳐져 있다.”(《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
‘2000년대 인문사회과학 출판의 절정’은 이제 황홀한 추억이 되었다(그런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절의 인문사회과학서가 전체 출판시장을 주도한 것은 아니다. 경제위기, 혹은 사회적 위기의 시대에는 언제나 자기계발 서적이 출판시장을 주도했다(《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등의 밀리언셀러가 이 시기에 출간되었다). 자기계발 서적은 생존의 절박함과 성공에의 욕망이 동시에 투영된 것이다. 힐링이나 치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위기라는 상수가 있는 한 처세와 자기계발, 치유와 힐링은 언제나 가장 많이 팔리는 주제다. 그러나 동시에 위기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촉구한다. 인문사회과학서의 반격은 바로 그 지점에서 촉발된다.
2010년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위기에 직면한 독자들은 《시크릿》(론다 번, 살림Biz, 2007)과 같은 자기계발서에 의존하기도 했지만, 위기의 본질을 정의의 실종으로 의심한 독자들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뜨겁게 반응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밀리언셀러가 되었지만 정의 담론을 확장시키지도, 인문 출판시장을 견인하지도 못했다. 정의 담론을 논의하는 데 가장 좋은 텍스트도 아니고 대중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장 많이 팔렸지만 가장 읽히지 않은 책’으로 회자되기도 했으며, 안타깝게도 정의 담론은 독자들에게 제대로 소화되지도 못한 채 식상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인문학 열풍이라는 착시: 강신주에서부터 채사장까지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최근 소위 ‘인문학 열풍’으로 보이는 일련의 현상들이 있었다. 강신주, 채사장 등으로 이어지는 ‘인문학 스타’의 등장과 더불어 이지성 등 자기계발 저자들의 인문학 도서 출간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인문서가 여전히 초판을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인문학 열풍은 하나의 착시에 불과할 것이다.
강신주는 개인의 주체적 삶을 강조하는 철학자다. 그는 동서양철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뛰어난 소통능력을 발휘한다. 간명하고 명쾌하면서도 독설에 가까운 언설로 일상에 지친 독자들을 자극하고 독려한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프로네시스, 2009), 《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 2011), 《철학 VS 철학》(그린비, 2010) 등의 수작으로 이미 주목받는 저자였으며, 2013년 이후 TV, 라디오, 팟캐스트 등에 적극 출연하고 《강신주의 감정수업》(민음사, 2013), 《강신주의 다상담 1~3》(동녘, 2013),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동녘, 2013) 등의 베스트셀러를 연달아 내놓으며 ‘인문학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강신주는 하나의 브랜드였고 하나의 현상이었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철학적 테제를 제시했다는 점, 대학이 아닌 광장에서 대중 독자들을 직접 만났다는 점, 그리고 방송과 팟캐스트 등의 미디어 노출이 더해지면서 ‘강신주 현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강신주는 자본주의를 악으로 규정하면서도 자본주의라는 메커니즘에 맞선 조직적인 싸움과 연대를 주장하지 않으며, 다만 자본주의라는 급류를 견디며 살아남는 개인의 존엄과 의지를 강조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지성은 우리나라 최고의 자기계발 저자다. 그런데 그가 언제부턴가 인문학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인문학 전도사’로 불리기도 한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문학동네, 2010)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이라는 부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차이, 2015)에는 ‘5000년 역사를 만든 동서양 천재들의 사색공부법’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인문학을 수행하는 방법론으로서 공부를 강조하는 것이다. 인문학을 차용하는 자기계발 분야의 저자는 이지성만이 아니다. 공병호, 구본형 등도 마찬가지다. 자기계발 도서의 과잉과 소재의 고갈에 직면한 이들에게 인문학은 하나의 블루오션과도 같을 것이다.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2》(한빛비즈, 2014~2015, 이하 《지대넓얕》)은 ‘인문형 자기계발서’를 표방하지만 이지성 등의 책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다. 《지대넓얕》은 2015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로 매우 흥미롭다. 채사장이라는 캐릭터, 팟캐스트의 성공 ‘이후’ 출간, 뛰어난 논술 선생의 강의를 듣는 느낌, 쉬운 인문학, ‘소통을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만만한 목표 등이 이 책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채사장이 지향하는 ‘그 무엇’을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호감을 샀을 것이다. 《지대넓얕》은 형식적인 면에서 보자면 인문학을 기초적인 여섯 분야로 나눠 쉽게 설명하는 주현성의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더좋은책, 2012)과 유사해 보이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간다. 예를 들어, 1권은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을 ‘연결’하여 현실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역사에 대한 채사장의 해석과 세계관이 은밀히 작동된다. 후속작 《시민의 교양》(웨일북, 2015)은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교양인을 위한 실용서’를 표방하는데, 채사장의 야심은 조금 더 노골적이다. 《지대넓얕》 2편을 읽고 나서는 채사장 열풍이 사그라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시민의 교양》을 읽으면서는 우려보다 기대가 더 많아졌다. 나는 ‘그 무엇’을 채사장의 인문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인문학자들은 채사장이 결국 인문학을 자기계발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인문학적 사유를 요점 정리하는 방식으로 상품화했다고 비판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과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채사장은 자신의 책을 ‘성공’을 지향하는 독자가 아닌, 현실적인 이유로 교양지식을 취득할 수 없었던 평범한 독자부터 가난하면서도 보수 정당을 뽑는 독자,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불안하면서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독자에게 권하고 있다. 이러한 ‘낮은 목표’는, 이 책이 ‘인문학을 내세운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을 내세운 인문서’에 가깝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 쉬운 인문학은 언제나 절실하므로, 채사장의 전략은 꽤나 효과적이다. 내 아쉬움과 바람은 다른 지점에 있다. 주입식 강의에서 대화와 토론으로, 해석에서 숙고와 실천으로, 개인의 자리에서 연대의 모색으로, 쉬운 인문학에서 웅숭깊은 인문학으로, 채사장의 인문정신이 진화하길 바라는 것이다.
인문 출판의 세 가지 흐름, 그리고 인문정신의 길
인문 출판은 앞으로도 세 가지 흐름이 서로의 역동으로 작용하며 진화할 것이다. 첫째, 소수의 파워라이트가 주도하는 인문 출판이다. 강신주와 채사장 이후엔 누가 등장할 것인가? 채사장은 진화할 수 있을까? 유시민, 한병철, 박웅현 등은 여전히 건재할까? 마이클 샌델과 셸리 케이건 이후 새롭게 발견될 해외 저자로는 누가 있을까? 많은 출판사들은 여기에 집중할 것이나 그 기획의 성공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할 것이다.
둘째, 자기계발과 융합된 인문학의 자가발전이다. 이지성, 공병호, 구본형, 정진홍 등의 자기계발 저자들이 가공한 인문학 상품들은 여전히 잘 팔릴 것이며, 꾸준히 신상품을 개발할 것이다(그러나 과연 이 책들을 인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기존의 인문 저자들도 인문학의 실용을 도모할 것이다. 고종석, 유시민 등의 글쓰기 실용서 출간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이상의 두 흐름이 인문학 열풍이란 착시를 일으켰다면, 다음의 세 번째 흐름은 오랜 인문정신을 계승하는 인문 출판의 본류로, 인문학의 위기라는 역류에 맞서 여전히 고투하고 있다. 강신주가 자본주의라는 악에 맞서 개인의 구원을 강조했다면, 이들은 고립된 개인의 연대를 기반으로 자본주의와의 불화를 기꺼이 선택한다. “예수의 무능을 로마의 유능을 포섭했듯… 속절없는 무능은 오히려 타락한 세속의 속살에 파고들어 깊은 균열을 안길 수 있다.”(김영민, 《동무론》, 한겨레출판, 2008) 채사장이 현실세계의 모순에 대한 통섭적 사고의 틀을 제시했다면, 세상과 삶의 다양한 층위에 대한 심층의 문제에 조응하는 인문학을 더불어 공부하며 실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위악의 시대에 맞선 인문정신은 필연적으로 연대의 삶으로 귀결된다.
다양한 곳에서 인문학 강독 모임을 개척한 ‘인문학 파르티잔’ 강유원, 철학과 문학을 아우르고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걸으며 ‘장미와 주판’이라는 학습공동체를 이끌던 김영민, 남성적 통념에 대한 전복적 사유로 여성주의와 평화학의 길을 제시한 정희진, ‘수유너머’라는 코뮌을 매력적으로 실천하던 고미숙, 이진경, 고병권 등은 바로 이 흐름을 주도한 인문 저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김상봉, 서동욱, 김찬호, 김두식, 노명우, 맹정현, 엄기호, 김현경, 은유, 오찬호, 우치다 타츠루, 사사키 아타루 등도 주목해야 할 저자다.
학습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고미숙, 이진경, 고병권만 따로 소개한다. 고미숙은 2011년부터 ‘수유너머’를 떠나 ‘감이당’에서 활동하며 ‘몸·삶·글’이라는 키워드로 역학 인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출판공동체 북드라망을 설립하여 기존의 저서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등을 재출간하였고, 동양의학을 재해석한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와 동양역학을 재해석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이상 북드라망, 2012) 등을 펴냈다. ‘외부의 철학자’로 불리는 이진경은 ‘수유너머N’ 연구원이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로 있다. 한때 대학 신입생들의 철학 입문 필독서로 널리 읽혔던 《철학과 굴뚝청소부》(개정증보, 그린비, 2005) 등을 비롯한 다수의 저작이 있다. ‘수유너머R’에서 활동하는 고병권은 “철학은 지옥에서 가능성을 찾는 일”이라고 믿는 ‘거리의 철학자’다. 비정규직, 장애인, 불법 이주자, 성매매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곁에서 철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살아가겠다》(삶창, 2014), 《철학자와 하녀》(메디치미디어, 2014) 등을 펴냈다.
이들은 인문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고자 학습공동체에서 활동하는 공통점이 있다. 제도권 교육 밖에서 도반과 더불어 인문학을 공부하고 삶의 기예(技藝)를 벼린다. 이들에게 인문‘학’은 곧 인문‘삶’이다. 이러한 학습공동체들은 곳곳에서 출몰하며 인문정신을 확산시키고 있다. 그리고 인문학으로 특화된 전문 출판사들과 그 현장을 제공하는 서점과 도서관 등도 등장했다.
인문 출판의 흐름을 기술하고자 비교적 최근에 시작한 출판사만 잠시 소개하자면, 에드워드 사이드 전집을 출간한 ‘마티’, 음식인문학을 표방하는 ‘따비’, 고전·공부·중국에 특화된 출판에 집중하는 ‘유유’영원과 본질을 향한 보르헤스의 사유를 따라 인문의 책을 펴내는 ‘알렙’, 새롭고 고통스러운 생각이 깃든 문학과 인문 분야의 책을 펴내는 ‘북인더갭’ 등이 돋보인다.
지역에서 저자와 독자의 가교 역할을 하거나 인문학 공부와 독서운동을 주도하는 서점과 도서관, 독서모임으로는 부산의 청소년 인문학서점 ‘인디고서원’, 서울 옥인동의 ‘길담서원’, 혜화동의 ‘이음책방’과 ‘호모북커스’, 홍대 부근의 ‘땡스북스’, 논현동의 콜라보서점 ‘북티크’, 신림동의 ‘연구공간 짓다’, 춘천의 ‘인문학카페 36.5도’, 다양한 독서운동을 펼치는 학습공동체 ‘숭례문학당’과 ‘백북스’ 등이 있다. 이들은 인문학을 기반으로 우정과 연대의 공동체로, 인문 공부와 삶이 실천되는 현장의 주요 거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인문 공부와 삶을 다룬 책의 흐름’을 말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인문학이 처한 현실을 통해 대학의 몰락과 대학 밖 지식공동체의 가능성을 살폈다. 인문 출판은 언제나 위기였으며, 간혹 인문학 열풍으로 회자되는 일련의 현상은 사실 일부 극소수 인문학 스타의 탄생이거나 자기계발 시장의 확장일 뿐이었다는 다소 비관적인 해석도 덧붙였다. 그러나 인문학은 저항의 정신이기도 하다. 인문학, 특히 공부와 삶을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은, 신자유주의로 표상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온갖 자기계발로도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사회의 변방에서, 대학이 아닌 대학 밖에서, 인문‘학’과 인문‘삶’의 경계에서, 자본에 포섭된 지식권력이 아닌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에 의해서 인문정신은 다시 발견될 것이다. 실용이 아닌 공부, 경쟁이 아닌 공존의 삶을 강조하는 것이 인문정신의 길이다. 인문정신은 스스로의 길을 열 것이다. 인문 출판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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