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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몰락 그의 책

Soli_ 2016. 3. 18. 08:36



그의 몰락 그의 책



1.


함께 책을 만들었던 저자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은 몹시 아프고 슬픈 일이다. 과연 나를 사로잡았던 그의 견고한 사유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오래 간직해야 할 텍스트이므로 마땅히 책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하거나 설득당했던 그 순간의 희열은 다 무엇이었을까. 저자의 추문이 들려오던 즈음 나는 극심한 우울을 앓았고 간혹 고독과 회의에 빠졌다. 지난 며칠 그의 책을 다시 읽었다. 잔뜩 벼린 논리는 서늘했고 깊고 둔중한 사유는 뜨거웠다. 그리고 그의 책을 원래 있던 서가에 고이 꽂아두었다. 언젠가 다시 꺼내 읽을 것이다.


추문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그의 책은 어찌해야 하는가. 답을 찾았다. 정답이 아니라 결심에 가깝다. 그 책을 만든 출판사에 계속 있었다면, 나는 이 책을 지켜내자고 말할 것이다. 다만 난 독자로서 그의 몰락을 애도할 것이다. “죽음을 국소화하는 작업”으로서의 애도다. 얼마간의 분노와 슬픔으로 곡할 것이다. 그는 저자로서 생명을 잃었지만, 나는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그가 혹 범죄자일지라도, 죽음을 향한 애도는 필요하다. 애도는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므로. 그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있다.


"이 세상의 무대에서 누군가가 그냥 퇴장해버리는 것만큼 남아 있는 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없다.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살아 있는 것에 죄의식을 느낄 뿐만 아니라 살아 있음, 살아남아 있음의 의미를 납득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애도는 죽음을 국소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가 사라져버렸을 때 최소한 그의 시신만이라도 찾기를 바란다. 시신은 우리가 직면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애도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의 추문이 드디어 기사화되었고 유력한 증언들이 있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유보하겠다.



2.


내 첫 직장은 기독교출판사였다. 오래전 한 저자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커밍아웃한 것을 계기로, 그의 책을 절판시킨 사례가 있었다. 국내 저자도 아닌 해외 저자이지만 그렇게 했다. 그것은 옳은 일이었을까,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정무적 판단’ 때문이었을까. 내가 그 책의 편집자라면, 그 출판사의 대표라면 어떠했을까. 그곳에 입사한 직후 대표가 물었다. 대표는 "너라면 어떻게 했겠니?"라고 물었고, 나는 "저라도 절판시켰을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대표는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정무적 판단’은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자의 정치적 전술에서 비롯된다. 전술은 생사의 갈림길이 되기도 한다. 나만의 생사가 아니라 내가 책임지는 이들의 생사까지 달려 있으므로, 그 전술은 상당히 보수적으로 실행된다. 여기선 특히 기독교출판의 힘겨움을 고려해야 한다. 기독교출판시장만큼 사상 검열이 극심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사상 검열에 걸려 정치적 판결이 내려지면 그 출판사는 '그 바닥’에서 제대로 영업하기 힘들다. 심지어 어떤 출판사는 자신들이 만든 책에 “이 책의 내용은 출판사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보험 문구’를 써놓기도 했다.


그날 이후 그곳에 있으면서 그 대답은 오랫동안 죄책감으로 남았다. 동성애 문제에 대한 소신 때문이기도 했고, 그 책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념을 결행할 수 없는 출판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어떤 정치적 전술은 통념에 근거한 왜곡이 허다하다. 통념은 권위를 구축한다. 통념의 세상에서 통찰의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출판이다. 조직의 생사를 책임진다는 말 또한 과장이다. 다시 그날의 질문에 맞닥뜨린다면, 그 책을 지켜내겠다고 답하겠다. 극심한 번민은 앓아야 하겠지만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말하겠다.



*그 출판사는 이후 다른 책에는 소신을 발휘했다. 동성애 논쟁에 휩싸인 헨리 나우웬의 책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현실정치에 개입하고자 노력했으며(기독교출판사로선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강정마을 책을 만들기도 했다. 편집자의 자긍심을 북돋는 용감한 출판사였다.



3.


책은 저자의 것일까. 물론 이 질문은 저작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저자에게 명백한 귀책 사유가 있을 경우 출판사는 출판권을 포기(절판)할 수 있지만, 이 질문은 출판사의 법률적 권리를 묻는 것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책으로 발화된 텍스트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그 텍스트의 당위는 무엇으로 획득되는가. 


나는 전적으로 독자의 선택과 판단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삶이 책의 내용을 보증한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좋은 독자는 저자를 맹신하지 않는다. 독자는 치열한 독서로, 저자가 아닌 텍스트와 고투해야 한다. 그다음 독자는 그 책을 소유하거나 버린다. 책의 숙명은 독자의 사명으로 결정된다.


저자를 떠난 텍스트는 독자의 삶에서 사유와 서사로 움틀 것이다. 그렇지 못한 텍스트는 퇴화될 것이다. 그것이 책의 숙명이다. 저자가 몰락하더라도, 심지어 범죄자라 할지라도, 난 그 책의 숙명을 그에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편집자의 염치다.







*이 글은 페이스북에 썼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