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갈 무렵, 출판사에서 다시 일하기로 결심했을 즈음부터 책 읽기는 호흡의 패턴을 잃었다.
책은 희망이자 절망이었고, 삶의 일탈이자 권태였다.
뜨겁던 여름의 쇠락은 가을에 사무쳤고,
난 숨가쁘게 달리면서도 그 서글픔이 살뜰하여 자주 울었다.
그리고 겨울에 이르렀다. 유난히 소담스런 책들이 나를 맞는다.
미카미 엔은 책으로 얽힌 인연의 미스터리로 유혹하고,
이서희는 관능의 문장으로 나를 매혹하여 사로잡는다.
손택의 청춘은 열정을 다스리는 파토스를 선사하고,
김두식의 단단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은 길 너머 길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게 다다른 나의 밤엔 김연수의 노란 불빛 서사가 기다린다.
책이 다시 삶의 호흡이 될 조짐이다. 예사롭지 않은 겨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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