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블로그(link)에 올린 글인데, 이곳에도 올립니다.
1. 은둔자 (막심 고리키 지음/이강은 옮김/문학동네)
막심 고리키는 20세기 소비에트연방에 저항하며,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민중을 혁명으로 이끈 예술가다. 이데올로기의 폭압에 저항하며 인간다움을 견인하는 것이 예술의 소명이었다. 이 책은 고리키의 대표 단편선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입문서로 충분할 듯 싶다.
2. 진저맨 (J. P. 돈리비 지음/김석희 옮김/작가정신)
이 소설은 1955년 제2차세계대전 직후 쓰여진 작품으로, 신성모독적, 음란하고도 비속적 언어, 초도덕성으로 무장한 '진저맨'('생강색 머리의 남자'라는 뜻)의 이야기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수백 가지 판본으로 5천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이 작품이 쓰여진, 그리고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던 그 시대적 정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절대 가치가 무너지며 불안과 허무가 엄습하고, 그 자리를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대신하던 시기, 바로 그때 '진저맨'은 맹위를 떨친다. 우리나라엔 다소 늦게 소개되는 느낌이나 김석희의 번역이므로 일단 신뢰하고 환영하는 것이 마땅할 터.
3. 파과 (구병모 지음/자음과모음)
김영하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이 가속도 높은 남성적 필치로 한 '전직' 연쇄살인범이었던 독거 노인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구병모는 60대 '현역' 여성 킬러를 형상화한다. 환갑이 넘어 '업계'의 대모의 반열에 오른 주인공의 눈에 어느덧 타인의 모습이 들어온다. 김영하의 소설이 파멸되어 가는 한 남성 살인범의 비극을 다뤘는데, 구병모는 평생 청부 살인업자로 살았던 주인공에게 구원을 선사할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구병모를 기억한다면, 그 궁금증은 설렘의 또다른 은유다.
4. 여름 거짓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김재혁 옮김/시공사)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한 잔상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지독한 고독, 혹은 욕망. 그리고 휘몰아치는 시대의 폭력. 그 간극을 유유히 관통한 슐링크의 서사에 나의 죄의식은 출구를 찾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이번엔 그의 단편집이다.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책은 대부분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찰나의 흥분에 가깝다. 슐링크는 다소 난해한 감정이입의 단계를 거쳐 집요한 서사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단편도 그러할까. 그러기를 기대한다. 도서 소개 문안에 이런 문장이 있으니, 좋은 시작이다. "우리는 사랑과 행복을 찾고자 거짓말을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해서 정말 행복해지는가"
5.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예판에서 구매했는데 집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서점에서 보았다. 약속 시간이 한시간 넘게 남아 서점에 들러 매대에 놓인(쌓인)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압도적 서사'가 속도감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소설에 맞는 말이다. 언뜻 꽤 오래 전에 쓰여진 그의 전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연작처럼도 느껴졌다. 김영하의 최고작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또 김영하의 절정은 아직 오직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 정도면 훌륭하다 싶다. 책을 읽는데는 한두 시간이면 족하지만, 주인공 '김병수'의 아포리즘을 읽는데는 하룻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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