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이란 영혼의 슬픔을 감당하는 육신의 고뇌가 아닐까, 생각했다." 마감을 하루 앞둔 지난 주일, 원고의 서두에 이 문장을 썼다. 이 문장의 앞에는 "삶은 위태롭다. 의연하고 돌온했던 명분들과 날선 마음의 결기가 이리 쉽게 무너질지 몰랐다. 몸살을 앓았다."라고 썼다. 그리고 원고는 멈췄고, 몸살은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회복될 즈음, 마감을 며칠 넘겨 원고는 완성했다.
그런데 내가 회복할 즈음, 돌연 아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깊고 처연한 몸살이었다. 아마, 아내의 몸살도 '영혼의 슬픔을 감당하는 육신의 고뇌'였을 것이고, 아내의 슬픔은 나보다 깊었을 것이다. 아파서, 아내의 몸살을 지켜보며 무력했던 한 주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새벽에 깨어 챙겨야 할 일들을 주섬주섬 헤아리다가 문득 이면우의 시 <저녁길>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이들에게로 뻗는 저녁길엔 지름길이 없다, 라고
멀어져가는 그의 등에 또박또박 쓴다
진눈깨비와 어둠에 녹아 안 보일 때까지
물론 이 시는 연인에 대한 애틋한 연서가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의 슬픔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담고 있다. 아내를 안 지 십 년, 결혼한 지 칠 년 즈음 된 것 같다. 사랑은 세월을 견디면서, 아내를 향한 나의 마음은 어느새 이 시와 닮아 있다. 연민하고 연대하는 마음은, 지름길을 찾지 않는 결연함을 수행한다. 연인의 사랑은 벗의 우정까지 탐한다. 그리하여, 그때 쓴 원고의 마지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위태롭다, 그런데 그것이 희망이란다. 희망은 완고한 어둠처럼 막막하나, 완고한 어둠만이 희망을 잉태한다. 서럽던 가슴은, 다행히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속삭임을 듣고 움켜쥔다. 그래, 그것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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