霓至園_/rainbow_

안녕, 현서

Soli_ 2006. 3. 23. 20:22

지난 월요일, 8주차 아기의 형체를 가졌지만 심장이 멈추어버린 현서를
병원에서 보고 오던 날. 그날 밤 꿈속에 현서가 나타났었다.
무채색 초음파 사진으로만 보았던 현서였지만,
속의 천연색 빛깔로 나타나 나를 보며 웃고 있던 그 아이가 현서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울고 있는 나에게, 현서는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다.
현서의 웃음은 순결했다. 작별 인사, 현서는 그렇게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하루 이틀, 극심한 혼란과 고통 속에 신음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오늘 아내는 수술대에 올랐다. 아내는 마취제가 몸에 퍼지기 전에
현서에게 눈물로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잠깐의 수술 끝에 '숨'을 잃어버린 현서의 육신은 아내에게서 제거되었다.
수술 끝에 인내심 많은 아내는 또 그렇게 울음을 소리 없이 삼켜야 했지만,
우리는 이내 곧 평안해졌다.
 
미역국을 비롯한 반찬거리를 마련하여 달려오신 형수님과 둘째 처형,
멀리 홍천에서 올라오신 첫째 처형, 금식기도원에서 눈물 젖은 위로를 전하시던 목사님,
전화로, 문자로, 때로 눈물로 위로해주시던 많은 분들.
 
산모수첩, 현서에게 읽어주던 책들, 성급한 마음에 마련했던 아기용품을 정리했다.
그리고 눈물 대신 웃음으로 현서를 기억하기로 했다.
우리는 슬픔은 가슴에 묻되, 현서의 이름은 평생 간직하기로 했다.
 
8주 동안 우리와 같은 '숨'을 가지고, 부모 되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던 고마웠던 아이,
밤마다 시편을 함께 읽고 기도했던, 도리어 우리의 힘이 되어주었던 아이,  
우리의 사랑이 너무 이기적임을 일깨워주던, 우리의 소망이 너무 작음을 말해주던 아이,
진형이 순일을, 순일이 진형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기쁨임을 말해주던 아이,
그 아이의 이름은 현서였다. 밝아오는 새벽, 빛나는 새벽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 현서.
 
안녕, 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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