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音(태명)
1.
구약성서에서 "긍휼"(Mercy)은 여성의 자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racham'에서 나온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기신다는 것은, 우리를 당신의 태 속에 있는 아이처럼 품으시고 지키신다는 의미이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긍휼히 여기라는 의미는, 태 속에 있는 아이를 품고 있는 어미의 사랑처럼 품고 보살피라는 것일게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시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다. 태 중의 아이가 어미의 자궁 속에 보호를 받지 못함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곧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육신은 살아있으나 영혼은 호흡을 잃어버리고 만다.
2.
지난 목요일 밤 늦게까지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하혈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급히 병원에 전화해 상담해보니, 유산 징후가 보인다고 병원으로 바로 오라고 한다. 집까지 가는데만 1시간 남짓 걸리는지라, 그리고 공사 중인 인부들을 두고 책임자인 내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울고 있는 아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 한번의 유산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참으로 잔혹한 고통의 순간들이었다. 급하게 친구에게 부탁해 아내를 병원으로 옮기고 형과 어머니가 병원으로 달려갔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급한 치료를 이미 마친 후였다.
위기의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잔혹한 고통이지만, 그 순간 하나님의 긍휼을 배울 수 있음은 또 다른 축복이다. 하나님의 긍휼로 오늘 우리가 숨쉬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꿈꾸며 살아간다는 것. 하나님의 긍휼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게 만드는 기적, 우리를 숨쉬게하는 호흡이라는 것.
아이는 아내의 태 속에서 여전히 심장 박동을 가지고 있다. 고맙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하혈도 계속하고 병원에선 여전히 유산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그래도 고맙고 또 고맙다.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이 아이마저, 하나님께서 데려가실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긍휼을 깨우치게 해주신 것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해주신다면, 정말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우리도 당신 닮은 긍휼의 사랑으로 아이를 지키고 보살피며 섬길 것이다. 그렇게 기도한다.
아내는 휴직을 해야한다. 병원에도 매일 가서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 계속 누워있어야 한다. 아내 옆에서 내가 지켜줄 상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있어야할 마땅한 자리에 함께해주지 못하는 남편에게 여전히 신뢰와 위로를 전하는 아내가 고맙고 또 고맙다.
오늘 오후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지치고 힘겨운 육신과 영혼이 아내의 메일을 받고 위로를 받는다.
지난 한주동안 넘 힘들었지?
그래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오늘 아기 심장 소리 듣는데, 이 녀석 내 말을 넘 잘 듣는것 같아. 그래서 이뻐~
내가 계속 엄마 꼭 붙잡고 있으라고 내가 계속 아기에게 말해주었거든.
물론 하나님의 지키심이 크지만.
자기야 우리 힘내자!!!
오늘 잘 자고 내일 보자!!
우리 아이의 태명을 '지음'이라고 지었다.
하나님이 빚으시는 아이, 지음. 우린 '지음'을 부르며, 아멘으로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