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최고의 책, 이란 수사는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 최근 어떤 책을 블로그에 추천했는데 그 책의 출판사 카피가 그랬다. "그의 최고의 책". 충분히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하나 정말 그런가, 의문이다. 그의 대표작을 이미 보유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책에 그 수사를 붙인 것은 자신감인가, 무모함인가. 그 어느 쪽이라 할지라도 경솔하다는 생각이다. 그 다급한 마음이야 왜 모를까 마는.
어떤 작가의 최신작이 언제나(또는 대부분)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에 대한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내겐 '소설가 김연수'가 그렇다. 그의 대표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감히 기대한다. 그래서 이번 "복상"엔 '그의 최고의 책'이란 카피가 붙은 어떤 책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김연수의 소설집을 소개했다. 수년 간 발표한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라 '최신작'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김연수'를 소개하고 싶었다. 내가 왜 그를 좋아하는지 말이다.
다음은 서평 중 일부. 전문은 <복음과상황> 3월호에서.
작가는 저마다의 어떤 불가피한 슬픔과 불가해한 고통에 대하여 ‘진실’이란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각각의 서사로 구현한다. 그가 의도하는 바는, 진실에 대한 해명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죽는 일”을 꿈꾸던 한 여인의 삶을 관통했던 잔인한 슬픔을 애틋한 시선으로 관조하거나(<사월의 미, 칠월의 솔>). “현실은 고통을 원리로 건설됐다.”는 비관을 직면하고 해명되지 않는 그 실체의 ‘비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한때 사제가 되고자 했지만 지금은 대리운전으로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선배와의 동행 속에(<파주로>), 자식을 위해 사랑을 포기했던 엄마의 가녀린 추억 속에(<일기예보의 기법>),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인 후에야 엄마와 우리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깨닫는 딸의 고백 속에(<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작가의 바람은 어떤 희망을 조심스럽게 가늠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혼자서 걷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곳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 저처럼 한낮과 다름없이 환하고도 파란 하늘에서, 혹은 스핀이 걸린 빗방울이 떨어지는 골목에서, 분당보다도 더 멀리, 아마도 우주 저편에서부터. 그렇게 저마다 다른 곳에서 혼자서 걷기 시작해 사람들은 결국 함께 걷는 법을 익혀나간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았다. 그들의 산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과 함께하는 산책과 같을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319쪽)
진실은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직면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타자의 고통에 닿을 수 없지만, 그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고백하며, 공존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온몸을 사용하여 그의 슬픔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함께 걷는 것이다. 작가는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머나먼 지평선의 반짝임을 바라보며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라고 썼다. 내가 김연수를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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