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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에게 추천하는 2014년 2월 첫째 주 신간

Soli_ 2014. 2. 11. 22:33
Y에게

언젠가 말했지만, 난 편집자보단 독자로서의 욕망이 훨씬 큰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10여 년 일한 출판사에서 나올 때, 다시는 출판사에서 일하지 않기를 각오했었지. 결국, 일년도 되기 전에 밥벌이의 당위에 굴복했지만 말야.(ㅠㅠ) 대신, 다시 책을 만들면서, 그 욕망의 순전함을 다짐하고 있어. 욕망의 순전함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좋은 책에 대한 갈망이 사유의 욕망이 아니라, 삶의 욕망이길 바라는 거지. 그럴 때, 많은 책에 대한 탐심을, 좋은 책에 대한 순정 아래 굴복시킬 수 있다고 믿어. 

다음은 2월 첫째 주(1/27-2/7), 너에게 추천하는 책들. 





와, 이 책이 번역되었네! '책에 관한 책'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라 하겠다. 




200마리가 넘는 '고아 코끼리의 엄마' 데임 대프니 셀드릭의 실화로, 매혹적 서사로 유명했단다.





언젠가 직원 워크숍을 갔는데, 하루를 꼬박 에니어그램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그때, 에니어그램에 대한 불신이 생겼단다. 뭐랄까, 사람에 대한 강사의 과도한 
단정이 도리어 본질의 근저에 닿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에 대한 탐구는 사람에 대한 지극한 정성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당연한 얘기겠지만, 난 에니어그램을 ‘누가’ 말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지점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해. 
전문성과 사람에 대한 태도,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믿을 만한 저자니까. 
하여, 에니어그램에 관한 매우 좋은 책일 것이다, 에 500원을 건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프레데릭 신드룸’을 일으킨 르누아르, 
우린 그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단다. 그의 비평은 날카롭고 우직하다. 
날카로움과 우직함, 이 상반된 형용을 품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라고 하겠다. 
‘책담’에서도 르누아르의 책을 하나 준비 중이니 기대하시길(깨알 홍보!). 우선 이 책을 읽어보자.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책(흥미롭지?). 
‘오늘’에 대한 모든 해석은 역사 속에 깃들어 있다. 어디, ‘현재’ 뿐일까. 미래도 그렇다. 
올리버 스톤은 라틴아메리카와 관련된 미국의 역사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저항적 지식인 타리크 알리와 대담을 했고, 이 책은 그 대담을 담았다고 한다(진짜, 흥미롭지?).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라는 부제에 설렌다.
‘좌파’라는 의혹만큼 우리나라에 흔한 것이 없지만, 그 개념과 실체는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유럽은 물론, 멕시코, 이집트, 튀니지, 우르과이 등에서의 좌파 지도를 그리고 있으니, 
전 세계의 좌파 지형도에서, 우리 좌파의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네가 우파냐 좌파냐를 떠나서 말이지. 




‘욕해야 사는 인간’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욕학’ 연구서. 세계 최초가 아닐까? 
욕학적 관점에서, 세상만 욕하고 인간은(자기는) 욕하기 않는 것에서부터 
세상도 욕하고 인간도(자기도) 욕하고 모든 것을 욕하는 것으로의 진보를 말한다고 하네. 
이름하여 “성악설적 전복의 개혁주의”. 아, 매력적인 책이야. 





<침묵>과 <깊은 강>의 작가 엔도 슈사쿠. 그가 죽을 때, 고인의 유언에 따라 두 책이 관 속에 함께 묻혔지. 그의 대표작은, 그 두 책이라 하겠다. <바다와 독약>은 예전에 가톨릭출판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었어. 
이 작품도 훌륭해. 기독교인이었지만, 슈사쿠는 언제나 믿음에 대한 오랜 통념에 도전했단다. 
그 믿음은 종교적 신앙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것이기도 해. 악(惡)에 참여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고뇌와 회의를 담은 소설이다. 과도한 확신에 사로잡힐 때, 우린, 언제나 슈사쿠를 읽어야 한다.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그의 소설들이 하나 둘씩 귀환하길 바라네!




공동선에 대한 논의는 과연 가능할까. 보수와 진보로(실은 극우와 보수로), 세대와 세대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철저하게 나뉜 이 땅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공동선’은 가능할까. 
이 책은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목차는 다소 평범해 보이나 
우리는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가 짐 월리스라는 점에 주목해야 하겠지.


그리고 이 주간의 책으로 강우일 주교의 책을 꼽는다.



2012년 가을,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를 만들었는데, 
그때 저자 맺음말의 마지막을 강우일 주교의 설교를 인용했었어.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는 선언이었어. 
근데, 당시 내가 수집한 자료로는 문정현 신부님도 설교 중에 이렇게 선언하셨고, 
또 여러 사제들이 동일한 선언을 하였기에, 굳이 그 출처를 강우일 주교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거지. 
그런데, 저자 송강호 박사님은 끝까지 강우일 주교의 설교라고 주장하셨고, 결국 내가 받아들였지. 
무식한 얘기지만, 난 그때에야 비로소 강우일 주교님을 알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분이 누군지 알아봤는데... 그제서야 송강호 박사님이 왜 그러셨는지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단다. 

이 책은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이 편집한 것으로 강우일 주교의 말과 글을 담았다. 
기억하고 연대하는 것, 이 단순한 당위를 감당할 책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단다. 
그것을 말할 자격을 가진,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