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선생님께,
책의 ‘꼴'을 생각할 때마다 회의懷疑합니다. 책은 무고한 나무들의 숱한 희생을 담보로 탄생하는 물질인 까닭에, 어제 스치듯 말씀하신 것처럼, 과연 이 책이 탄생의 당위를 획득할 수 있을지 묻습니다. 그 당위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혹은 던지는 질문들에 관한 것입니다. 물질이 사유로 조탁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선생님을 저의 저자로 청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여정에 깃든 수많은 질문이 다른 이의 텍스트를 빌어 인용될 때, 전 정색하며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라고. 오직 당신의 텍스트로 읽고 싶습니다, 라고. 수많은 질문들이 하나의 생각으로 발현되는 지점에서, 선생님은 지금 무엇을 열망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그 질문을 사수하기 위하여 감내하였던 소리 없이 치열했던 그 통증들은 무엇이었는지요.
짐작으로만 상상했던 그것을 책의 꼴로 조형할 수 있다면, 나무들의 무고함에 맞서 변명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거절하셔도, 유보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집자가 아니라 훗날 독자로서 만나도 괜찮습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사랑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부디, 저의 확신만은 오롯이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평안하시길 빕니다.
진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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