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북커스 송년모임에서 추천한 '2015 올해의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창비 펴냄┃15년 1월
감히 헤아릴 수 없다고 할지라도 단호히 기억해야 하는 슬픔에 관한 책.
“천천히 차오르는 슬픔이 아니라 습격하듯 찾아오는 통증”(김애란)에 관한 기록.
“그토록 큰 슬픔과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한 유가족의 말. ‘그냥 옆에 있는 거지. 뭔가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등 두드려드리고 같이 밥 먹고 옆에서 자고 또 담배 같이 피우고 그렇게.’ 슬픔의 무게가 두려워 망설였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264쪽)
“레비나스가 말했던가. ‘타인이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 그를 위해서 내가 책임을 떠맡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 나는 그에게 책임이 있다.’ 얼굴을 마주하며 우리는 함께 ‘있다’”.(341쪽)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김희정 옮김┃부키 펴냄┃15년 5월
친구의 장례식장을 다녀오며 이제 죽음이 낯설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여섯 살 예서는 자주 죽음이 궁금하다. 모든 생명은 결국 죽는다는 것을, 엄마도 아빠도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서는 어서 형아가 되고 싶지만 어른이 되는 것은 싫다. 내 나이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나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그 나이 즈음을 지나고 있다. 죽음을 곰곰 생각하는 요즘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나의 가장 강렬하고도 다급한 화두 중 하나다.
이 책의 메시지는 간결하다. 무의미하고 고통스런 연명 치료에 매달리기보다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죽음의 필연성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까. 삶에 대한 정직한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 물음에 하나씩 답해나가는 것이 결국 삶이 아닐까.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그런 용기를 갖는 것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진실을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용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335쪽)
《읽는 인간 - 우리는 왜 읽어야 하는가》
오에 겐자부로 지음┃정수윤 옮김┃위즈덤하우스 펴냄┃15년 7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치던 허클베리는, 자유를 찾아 도망치던 흑인친구 짐과 동행한다. 그는 백인들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짐을 내주고 현상을 받을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생각을 돌이킨다. ‘검둥이’(nigger)와 벗이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아홉 살 소년 오에 겐자브로를 사로잡았다. 이 소설은 그의 운명이 된다. 이렇듯 책 읽기는 누군가에겐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고도 가장 적극적인 투쟁”(장정일)이 된다. 또한 그것은 구원이 되기도 한다. 죽마고우의 자살, 언어장애와 행동장애, 자폐증을 앓았던 첫째 아들과의 공존 등 삶의 주요 고비마다 오에의 곁에는 책이 있었다. 그에게 책은 구원이었다. ‘읽는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의 일치는 바로 그 두 가지, 투쟁과 구원의 서사를 살아낸다는 의미인 것이다.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지옥으로 가도 좋으니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 제가 영향을 받은 것은 이 한 줄입니다.”(21쪽)
《샴고로드의 재판》
엘리 위젤 지음┃박옥, 하진호 옮김┃포이에마 펴냄┃14년 12월
유대인 집단학살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1649년 2월, 동유럽 샴고로드의 한 여관에 세 명의 음유시인들이 방문한다. 그들은 유대인 음유시인으로 부림절 공연을 하러 유대인 마을에 방문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을은 이제 여관 주인과 그의 딸만 남았을 뿐이다. 학살자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긴박함 속에서 여관에선 부림절 연극이 펼쳐진다. 집단 학살을 방조한 혐의의 신을 피고로 한 모의재판이 펼쳐지는 것이다. 여관주인은 검사가 되고 음유시인들은 재판장이 된다. 그리고 때마침 등장한 한 나그네가 신의 변호인이 된다. 검사의 날카로운 공격에 맞선 변호인의 유려하고도 논리적인 변호가 빛을 발한다. 나그네의 신실한 신앙에 재판장은 탄복한다. 그러나 학살자들이 그들 앞에 당도했을 때, 나그네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압도적인 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의 논리는 궁박하다. 신의 사랑은 가난하고 정의는 구차하며, 신의 전능은 그 모진 악을 견디는 것으로만 발휘되는 것처럼 보인다. 신앙은 오직 역설로만 가능하다. 악에 대한 신의 결백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억울한 이들의 기소에 대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응답하는 것, 신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샴고로드에서 신의 자비 운운하는 건 모욕이요. 오히려 그의 잔인함에 대해 말해야지.”(55쪽)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 권정생 지음┃양철북 펴냄┃15년 5월
1973년 마흔여덟의 이오덕이 서른여섯의 권정생을 찾아갔다. 이오덕은 모든 사람들이 권정생의 글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권정생은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아이들 곁에” 있겠다고 했다. 그들의 만남은 평생의 우정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통속’을 경계하며 “모든 불순한 것들에 저항”하기를 다짐하였고, “가난한 사람만이 가장 착하게 살 수” 있다고 서로를 보듬었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그들 삶의 결을 보여준다. 세상에는 이런 우정도 있다. 이오덕의 우리말이, 권정생의 동화가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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