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_/빛과소금_

사랑이라는 빛나는 모험에 대하여 (빛과소금, 130805)

Soli_ 2013. 9. 3. 12:06

★<빛과소금>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예지’는 지금 일곱 살인 저의 첫째 딸 이름입니다. 훗날 ‘청년 예지’에게 전하고 싶은 일상 영성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사랑이라는 빛나는 모험에 대하여




스무 살 예지에게,

 

오로지 ‘함께’가 아니면 의미 없음을 깨닫는 순간, 그녀와 결혼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녀는 ‘남자’에 대한 존재론적 회의를 가지고 있었고, 저는 ‘다른 존재’와 함께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꽤나 구체적인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선 저의 두려움만 얘기하지요.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가난의 숙명을 온몸으로 익혔던 까닭에 다른 누군가와 더불어 공동의 운명을 모색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의 인생만으로도 벅찼으니까요. 함께하여 얻을 수 있는 유익도 꽤나 매력적인 것이었지만, 만약 그 모험이 실패할 경우에 지불해야 할 대가는 훨씬 끔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맞아요. 결혼은 모험이었습니다.    


우정을 견고히 하는 사랑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때 그 시절의 편지들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그녀와 주고받던 편지들이지요. 그 편지들은 섣불리 로맨스를 탐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정을 희망합니다. 우리는 신중했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연애가 시작되기 전, 어느 봄날에 썼던 편지의 제목은 “‘시작’은 늘 희망을 품습니다”, 편지의 정점에는 전도서 4장 12절의 말씀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둘이 하나보다 낫다는 것. 둘이 있으면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져도 다른 하나가 붙들어 일으킬 수 있다는 것. 둘이 있으면 따뜻하다는 것. 둘이 있으면 승리하되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 둘을 성경은 ‘동무’라고 합니다.”


그녀는 저보다도 훨씬 가난했습니다. 우린 가난했다는 점, 그리고 숱한 방황으로 대학을 상당히 오랫동안 다녔다는 점이 비슷했지요. 그녀를 처음 본 것도, 봄학기의 첫 수업 시간. 편입생들과 복학생들이 앞에 나가 인사를 하며 자기 소개를 하던 시간이었어요. 그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으나, 그것이 미처 사랑인지는 모를 때였지요. 아무튼, 차비 아끼느라 한 시간 넘게 걸어 학교를 오가면서도, 편지를 주고받던 그즈음부터 그녀의 저녁식사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책 살 돈이 없어 학교 도서관에서 온갖 책들을 읽고 정리하여 페이퍼를 만들어 그녀에게만 슬쩍 건네곤 했지요. 


C. S. 루이스는 우정을 ‘길동무’에 비유하였습니다. 우정의 모체는 동료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비해 우정은 좀더 개인적이되 사회적 필요성이 덜한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동료는 함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친구는 같은 일을 하되 더 내적인 친밀함을 나눕니다. 친구는 ‘같은 진리’를 보고 나란히 걷는 것이지요. 


우정은 이처럼 어떤 합의를 통해 시작되지만, 사랑은 운명처럼 타오릅니다. 루이스도 비밀스러운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우정이 연인간의 에로스적 사랑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정과 에로스의 공존입니다. 에로스적 사랑에 함몰되지 않는 우정의 견고함을 지켜 내는 것이지요. 


“만일 우리가 처음부터 우정의 ‘주제’보다는 우정의 대상 자체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면, 우리는 그를 그렇게 잘 알게 되지도, 사랑하게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정부(情婦)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전사를, 시인을, 철학자를, 그리스도인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 곁에서 함께 싸우고, 함께 책을 읽고, 함께 논쟁하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바른 길입니다.” _C. S. 루이스, <네 가지 사랑>(홍성사, 2005)


루이스의 경고(혹은 기대) 대로, 우리의 우정도 로맨스로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과정을 매우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수년간 우정이 깊어지고, 함께 다니던 학교를 졸업한 이후 수개월 만에 이루어졌지요. 우정을 다지던 오랜 시간들은, 루이스의 바람대로, 서로를 마주볼 뿐만 아니라, ‘같은 진리’를 향해 나란히 걷는 길동무의 우정을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뜨겁지만, 우정은 견고합니다. 견고한 우정이, 뜨거운 사랑을 견인할 때 그 연인은 같은 길을 완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원에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던 어느 여름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것도 조병화의 시 <공존의 이유>를 인용한 매우 조심스러운 고백이었지요. “작별이 올 때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귀세/작별이 오면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악수를 하세.” ‘작별’까지 각오한 ‘공존’을 제안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애초 결혼에 대한 마음이 없던 그녀였기에, 이런 프러포즈로 인해 자칫 친구를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연인으로 교제를 시작한 직후, 그녀와 처음 읽은 작은책도 <만날 때와 헤어질 때>(송인규, IVP, 1990)이었지요. 우린 교제를 시작하며, ‘헤어짐의 윤리’부터 공부했습니다.  


서로의 고독을 배려하는 사랑



우리는 고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우정은, 그 고독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고독은 우정의 연대를 모색하였고, 그 우정이 로맨스로 발전한 것이지요. 하여, 우리는 가장 깊고 내밀한 아픔을 고백하고 나누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나누지 못한 서로간의 ‘비밀’을 소유할 때, 우리의 사랑은 더욱 은밀해지고 견고해졌지요. 하지만 모든 것을 함께한다고 하여, 각자의 고독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연인들은 뜨거운 사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한 고독의 잔재가 마치 사랑에 균열이 생긴 것처럼 의심하거나 오해하기도 합니다. 어떤 고독은 필연적이며 특권이 되기도, 사랑의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타인의 지배 아래 놓인 일상을 극복하는 것은 ‘유한하고 고독하며 불안으로 가득 찬’ 자신만의 공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고독은 단순히 외로움의 시간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밝히는 시공간이라는 것이지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고독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가장 뛰어난 책 중의 하나인 폴란드의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 2012)에는 다음과 같은 빛나는 문장이 나옵니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정작 당신은 당신이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쳐버린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더 나아가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고독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고독은 ‘사랑의 숭고한 조건’입니다. 연애를 하며, 그리고 결혼 초기에 절실히 깨달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는 당위는 당연히 서로의 고독도 포함됩니다. 그 당위의 마땅한 함의는, 고독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외로움을 목격할 때, 한 발치 물러서기보단 반복되는 외로움의 이유를 추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불현듯 다가오는 외로움에 고요히 침잠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지요. 현명한 그녀는 지금도 저를 홀로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 저를 배려한답니다. 사랑은 서로의 고독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정황을 고려하고 극복하는 사랑



연인의 사랑이 결혼을 결심할 때, 여러 변수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배우자가 속한 사회적 정황까지도 수렴한다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정황은, 안타깝게도 여성에게 희생과 패배의 숙명까지 강요합니다(만약 그대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면, 이 명제를 그와 나눠보십시오. 이 명제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안타깝지만, 그대의 사랑은 아직 결혼이란 사회적 정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는, 여성들을 어떤 고착된 역할에 머물게 합니다. 또한 그것은 남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성이 존재하는 범주 위에 남성의 주체도 성립하는 까닭입니다. 이 땅의 여성들에게 결혼이란, 희생과 패배를 받아들이거나, 그것과 맞서 싸우는 것을 각오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 아니, 그 이전부터 여성으로 한국이란 나라를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여성주의’를 공부해야 합니다. 


“나는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안적 행복, 즐거움 같은 것이다.”

_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13, 개정판) 


결혼을 앞두고 페미니즘을 공부했습니다. 주로 제가 공부하고 그녀에게 확인 받는 방식이었지요(지금 생각하면, 함께 공부하는 방식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녀에겐 치유, 저에겐 각성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남자의 회심은, 그리스도인의 회심을 더욱 굳건히 하였습니다. 이는 평생 극복해야 할, 함께 싸워야 할 우리 시대의 정황이자 소명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친구로 만나 우정을 견고히 하였고, 서로의 고독을 배려하는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사회적 정황, 우리나라의 사회적 정황에 맞서 결혼을 작정하였지요. 폴 투르니에는 결혼은 “단순히 한 번 반짝이고 사그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경험하는 새롭고 경이로운 모험”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2005년 4월, 그리스도의 부활을 하루 앞둔 봄날 결혼하였고, 2007년 4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 그대를 출산하였습니다. 차마, 그대에게 우리와 같은 방식의 사랑을 권할 용기는 없습니다. 오롯이 그대의 몫이겠죠. 다만 우리는 묵묵히 그대 옆에서, 그대의 사랑을 응원할 것입니다. 


그대의 아빠, 진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