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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노트 003(2013/01/26), 「위로하는 정신」에서 「복음과상황」까지_

Soli_ 2013. 1. 26. 00:30

★관련 포스팅





위로하는 정신_체념과 물러섬의 대사 몽테뉴(슈테판 츠바이크 지음|안인희 옮김|유유2012)

박맹호 자서전_책(박맹호 지음|민음사|2012)

2013 이상문학상 작품집_김애란 <침묵의 미래> 외(김애란 외 지음|문학사상|2013)

2013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_김숨 <그 밤의 경숙> 외(김숨 외 지음|현대문학|2012)

묻고 답하다(강영안, 양희송 지음|홍성사|2012)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창세기에서 배웠다(마르바 던 지음|김순현 옮김|IVP|2013)

복음과상황 2013년 2월호_박근혜 시대와 개신교의 역할







1. 내 나이 마흔. 이제 몽테뉴의 시대가 온 것일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직도 섣부른 희망일 뿐인가? 어찌 되었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위로받았고 격려받았다. 책으로 맛본 간만의 '힐링'이었다. 자유롭고도 흔들림 없는 그의 사색은, 뛰어난 전기 작가 츠바이크에 의해 단단한 성찰의 텍스트로 전해진다. "작은 장소에 묶여 있는 사람은 작은 근심에 빠진다." 한편, 나의 세상에 직면하되 스스로를 세상의 격동에서 지켜내고, 자유로운 인문주의자로 살고자 했던 몽테뉴의 삶과 사상은, 또다른 격동의 세월에 휘말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츠바이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작가 츠바이크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을 떠나 남아메리카로 망명을 가고, 그곳에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츠바이크는 몽테뉴를 스승으로 삼되, 그토록 갈망하던 스승의 자유에 왜 이르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몽테뉴의 '위로하는 정신'은, 나를 구원할 것인가? 아마 츠바이크는 그것을 기대할 것이나, 두고 볼 일이다. 


"자신을 책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이유에 대해 몽테뉴는 '그 다양한 내용을 읽는 것이 나의 생각하는 능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 판단력이 기억을 동원하여 일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자신을 자극해서 거기에 대답하도록, 자신의 의견을 말하도록 이끌고, 그래서 몽테뉴는 책에 메모하고, 줄을 긋고, 마지막에는 책을 다 읽은 날짜와 그 책이 자기에게 준 인상을 적어 놓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은 비판도 아니었고 문필 작업도 아니었으며, 그냥 연필을 손에 잡고 하는 대화였다."(93-94면)

"몽테뉴가 평생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라는 질문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나타나는 놀랍고도 선량한 점은 그가 이 질문을 명령문으로 바꾸려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즉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를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로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110면)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 살기 시작한다."(102면)

"세상일에 신경 쓰지 마라. 네 안에서 구원할 수 있는 것을 구원하라. 다른 사람들이 파괴하는 동안 건설하고, 이 광기 한가운데서 너 자신을 위해 분별을 지키도록 노력해라. 너 자신을 잠가라. 너 자신의 세계를 세워라."(127면)


2. 박맹호 자서전은 기실 민음사의 이야기이며, 한국 출판사의 현대사다. 솔직히 출판계 혹은 문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 재밌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또한 그들에게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나, 그 어둔 그늘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료로서의 가치, 그 사료에서 파생되는 여러 에피소드는 새겨 볼 만한 대목이 제법 있다(이 부분엔 대해선, 앞 부분의 정은숙의 추천사가 정리를 잘 해놓았다)

  나의 이십 대까지만 해도 민음사는 최고의 출판사였다. 세계문학전집과 같은 콘텐츠는 물론, 판형과 디자인에서도 발군이었다. 민음사의 텍스트는 늘 신뢰할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특히 민음사의 고집스런 디자인 감각은, 이제 좀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회장님 시대'는 이 책으로 그만 접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무엇보다 민음사를 위해서.     


3. 이상문학상과 현대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새해에 놓치지 말아야 할 즐거움이다. 김애란의 빛나는 성취가 질주한다. 아직 절정에 다다르지 않았을, 그럼에도 소설이란 장르마저 허물어뜨리는 그의 미학적 성취가 그저 경이롭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에선 김애란을 열외로 하면, 개인적으론 편혜영의 작품에 깊은 애정이 갔다. 

  그리고 소설가 김숨의 발견. 갈팡지팡하는 위태로운 존재, 소설 속 '경숙'에 깊은 연민을 가진다. 그 연민은 오늘 우리, 그리고 나를 향한 작가의 아득한 위로로 느껴진다. 혼란스럽게 시시각각 변하는 경숙의 시선 배후에 흐르는 일관된 위태로움, 불안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존재가 아슬하다. 경숙으로 인해 나도 위태롭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작가에게 새삼 고맙고, 이런 작가를 알게해준 현대문학상도 고맙다. 

  사족 몇 가지. 이상문학상 작품집, 참 잘 만든다. 수상 작품 및 작가에 대한 정성과 자부심이 돋보인다. 1쇄를 1월 18일에 찍었는데, 내가 가진 건 벌써 5쇄다. 김애란의 힘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집의 힘이기도 하다. 반면, 현대문학상 작품집은 90년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보는 것 같아 무척 아쉽다. 작품의 수준이 결코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4. 일반 출판계에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은, 기독 출판사의 책이 홍성사엔 있다. 물론 그들의 책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간혹 그렇게 빛나는 책들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내공을 칭찬해주고 싶다. 이 책이 그러하다. 비록, 왜 4년이나 걸렸을까 하는 의문이 있기도 하지만(시의성이 가장 중요한 대담집이 4년만에 나오다니!), 잘 만든 좋은 책이다. 

  강영안은 개혁주의 신학에 뿌리박은 인문주의자다. 가끔 그의 강의를 들으며, 그의 깊고도 단단한 신학적, 철학적 사유를 어떻게 대중 언어로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고는 했다. 그런 그가, 탁월한 대중 기획자인 양희송을 만나 빛나는 책을 만들었다.    



5. 마르바 던을 좋아한다. 피터슨 만큼의 깊이를 가졌으되, 피터슨 만큼의 매력적인 언어는 갖지 못한 까닭에 그의 책이 피터슨 만큼 팔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허나 피터슨도 나의 기대 만큼 많이 팔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피터슨과 비교하여 아쉬울 뿐, 피터슨에 비견할 만한 작가라는 점은 그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마르바 던 최고의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상당히 수준 있는 통찰을 제시하는 수작이다. 창세기 1-3장을 통해, 인간 본연의 정체성, 세상의 본질, 악과 정의 문제, 관계의 문제 등을 두루 살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출판사가 책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품은 것은 아닌가 한다. 제목과 표지, 내지 디자인 등에서 조금 오버했다는 느낌이다. 만약, 시즌을 여는 '에이스'로 이 책을 밀려고 했던 것이라면, 판단 착오가 아닐까 싶다. 난 모름지기 책은, 그 텍스트 수준을 정확히 반영하는 '옷'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서의 경우, 저자의 진심이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며칠 전에 썼던 인상 비평. 


"실제로 보니까 예쁘더라. 하지만 실제로 보면, 가격이 너무 비싸 보이더라. (딜레마다. 실제로 봐야 예쁜데, 실제로 보면 무지 비싸 보인다.) 더듬더듬 읽었을 뿐이지만, 잘 읽힌다. 특히 경어체, 좋다! 그런데 제목은 던한테 양해를 구했는지 궁금하다("이 책의 제목을 '내가 기독교 신앙을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창세기 1-3장에서 배웠다'로 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리하면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지 못하고 우리에게 맞출 것 같았습니다.", 207면). 결국 저자의 바램을 거스르는 제목 아닌가?" 


6. 나는 개념과 범위에 있어, "복음주의"란 바운더리 만큼 모호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여 "복음주의"란 단어를 이제 그만 버릴 때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그저 순전한 기독교, 순전한 복음이면 충분하다. 복음은, 오롯이 그 복음이 처한 상황 속에서 구현되는 것으로, 그것으로 그 순전함을 증명해낼 수 있을 것이다. "복음과상황"의 가야 할 길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독립언론 "복음과상황"의 건재는 매번 경이롭다. 1월호를 읽으며, 우리에게 이만열 같은 어르신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감사했다. 김은석 기자의 유작(?) 기사가 마음을 흔들었다. 기자의 향후 행보를 위해 기도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디자인, 아쉽다. 표지는 시의성을 주목하되 복상의 메시지가 직유적이되, 좀 더 세련되게 앉혀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표지는 호감이 가야 한다! 젊은 감각의 발칙한 기사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아쉬움을 토로하기 전에, 나부터 더 잘 써야겠다는 다짐이 먼저다. 쓰다보니 염치가 없어, 급히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