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홀수다(김별아 지음|한겨레출판|2012)
대한민국에서 여성 평론가로 산다는 것(심영섭 지음|열린박물관|2006)
공동 소유_미심쩍은 초대교회의 이상(루크 T. 존슨 지음|박예일 옮김|대장간|2013)
믿음_박영선 목사 설교선집 1(박영선 지음|조주석 엮음|복있는사람|2013)
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_영적 리더를 위한 내면 세계 건축법(고든 맥도널드 지음|김명희 옮김|IVP|2013)
0. 독서가에 대한 김영민의 충언을 다짐과 성찰로 되새기며, 이번 독서 노트도 쓴다.
"따라서 책을 읽는 자는 반드시 여러 책을 읽는 자이며, 읽으면 읽을수록 책과 자신 사이에 개제하는 낯선 부조화에 시달리는 자이며, 책이라는 '세계개창성'과 그 타자성에 조심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김영민, <당신들의 기독교>, 110-111면)
1. 영화 평론가 심영섭, 그 예사스럽지 않은 날카로움, 혹은 그 속에 숨기운 명민한 감수성을 마음껏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임상심리학자이지만 영화 평론가로 밥벌이를 한다. '심영섭'이란 필명은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한 사람'이란 뜻이란다. 여성권한지수 78위인(아마 영화계에선 더 바닥일 것이다), 견고한 '남성 아비투스'의 나라에서, 숱한 남성 감독을 제대로 까는, 그래서 욕먹는 여성 평론가이기도 하다. 평론, 혹은 비평, 하다못해 나같은 '듣보잡 서평'이라도 쓰려는 이들에겐, 적절한 귀감이 되는 책이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 된, 두 번째 순서로 앉혀진 짧은 글 하나 만으로도, 이 책은 매우 좋은 도전이자 위로가 된다.
"여성 평론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편에서는 은근히 페미니즘적인 시각의 영화 평을 기대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페미니즘적인 영화 평만을 쓰는 편협한 영화 평론가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이 편협이라면 평론가들은 아직 더 편협해도 된다고 믿는다. 오히려 영화 평론가들의 문제 중 하나는 어떤 이론적 바탕과 인문학적 소양 위에서 글을 쓰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알겠다. 이론을 가지고 영화에 대해 꿰어 맞추는 것이 가장 쉽다. 텍스트에 집중할 것. 그러나 나도 영화를 보며 꾸벅꾸벅 졸 때가 있다."(27면)
"중요한 것은 평론가라면 그것이 페미니즘이든 아니든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성찰이 깃든 전복력과 새로움을 발견하는 열린 시각이다. 더 나아가 '여성'이라면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넘어선 다원성 그리고 차이를 허용하는, 때로는 이방인, 무질서, 광기, 주변의 저급한 것들과의 화합을 꾀할 수 있는 파격과 너그러움이 깃들어 있으면 좋겠다. 나는 나를 남성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반대로 여성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29면)
"어쩌면 내게 20자 평에 관한 진실은 단 한가지였는지도 모른다. 목을 배려면 단칼에 벨 것. 20자 평을 하며 나는 내가 전생에 틀림없이 망나니였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로저 이버트처럼 평생 동안 두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썸 업, 썸 다운.' 하면서 영화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앞으로는 20자 평을 하고 싶지 않다. 아니 하지 않을 것이다. 망나니 역할은 이제 충분히 했다. 영화 평론가가 아닌 임상심리학자 노릇을 하던 시절에 분명히 나는 좋은 사람이었다."(47면)
2. 소설가 김별아의 산문집. 한겨레신문에 연재될 때, 챙겨 읽던 글들이다.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난 그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챙겨 읽었던 글들을 굳이 사서 곁에 두는 이유는 자명하다. 난 그의 글이, 그의 고민을("잡설, 독설, 객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무슨 말을 할까를 고민하기보다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할까를 고민했다.") 잘 지켜낸 지혜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덕분에 그의 소설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외로워서 그리운 게 아니라 그리워서 가만히 외로워져야 사랑이다."(17면)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덧붙여 한 가지 밝혀두자면,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파(自派)'다. 그러니 경계할 것도, 안심할 것도 없다.(...) 인간이라는 아름답고도 끔찍하며, 위대하고도 초라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손이 필요하다. 오직 그러한 인간을 재료이자 과제로 삼는 작가라는 존재로 살기 위해서는 빈손이 절실하다. 빈손은 현실을 재단하지 않는다. 인간을 심판하지 않는다. 소유의 움켜잡음을 위해 헛손질을 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자파'인 작가로 살기에 이렇게 텅 빈 채로 충만하다."(213-214면)
"그러하기에 세상의 중심은 권력자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고 힘든 사람, 어려운 이웃이어야 마땅하다. 타인의 아픔을 돌아보고 보살필 줄 알아야 내 아픔도 이해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 징검다리의 공감은 동정이라기보다 연민이다. 중증장애인을 자녀로 둔 엄마들의 분투기 <담장 허무는 엄마들>의 한 구절처럼, 연민이되 '그 고통만 안타깝게 여기는 연민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고통이 있다는 걸 아는 데서 나오는 연민'이다."(218면)
3. 예전에 <소유와 분배>(1990)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이다. <누가 예수를 부인하는가?>, <초기 기독교 신앙 체험>(이상 CLC), <살아 있는 예수>(청림) 등을 통해 루크 티모디 존스를 알게 되었고 좋아하게 되었다. 역사적 예수 연구에 헌신하되, 역사적 예수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부분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을 보았다. 학문의 성실함은, 충분한 고증과 추론을 논리적으로 병행하여 다다를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담보해 내는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성실한 신학자이다(특히 개정판 후기를 보면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개정판의 진수를 보는 느낌이다).
이 책도 그러하다. 누가-행전 연구를 통해, 초대교회의 공동 소유 문제에 대한 성숙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무엇보다 날카로운 비평과 숙고를 견지하되,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은, 공동 소유의 문제에 대한 헬라적 시각과 공동체에 대한 히브리적 사고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결국 소유의 문제는 공동체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이런 책은, 오늘날 참 불편하다. 인문학적 성찰마저 상업-자본주의적 포지셔닝으로 변질된 시대에, 이런 책은 무지 안 팔릴 것이다. 그런 시대인 까닭에,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겐 이 책을 사는 것 자체가 소명일 수 있겠다.
"우리는 소유를 ‘문제’처럼 인식하지만, 그것들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위에서 내가 소유의 문제를 퍼즐이라고 말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소유와 그 사용을 마치 수학적 정리인양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측면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이며 인간의 자유로운 성향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다."(16면)
"유토피아적 이상이나 구체적 사회윤리가 없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아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은 축복이다. 소유에 관한 성서증언들을 한 이데올로기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157면)
"인간 소유의 신비에 관한 신학적 묵상은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기억하기를 촉구한다. 그리고 참된 신학은 회심과 찬양으로 이어져야 한다. 신앙 공동체에서 신학이 올바른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려면, 인간 존재의 신비를 문제나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키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의 신비함을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신학은 신비와 문제 사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과 견뎌야 하는 것 사이에는 필연적이며 적절한 긴장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158면)
"공동 소유의 역사는 역설적이다. 공동 소유의 제도와 사상이 덜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에는 오히려 그 공동체는 오래가지 못했다. 선의, 우정, 구성원의 덕에 의지하는 공동체, 그리고 사유재산을 폐기하면 투장이 없어질 것이라 믿는 기대는 충돌하는 자아들과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는 장애에 부딪혀 사라지고 말았다."(174-175면)
4. 복있는사람이 <메시지>로 한참 호황을 누리기 시작할 때, 난 좀 우려했었다. 복있는사람의 콘텐츠가 <메시지>로 획일화 되는 것에 대해(또는 이질적 두 트랙처럼 보이는, <메시지>와 로이드 존스를 위시한 청교도 서적들로 양분되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와 맞물려 돋보이는(콘텐츠 뿐만 아니라, 디자인, 마케팅 측면에서도 돋보이는) 단행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이런 우려는, 사실 그만큼 복있는사람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선보인 박영선 목사 설교선집 시리즈는 다소 위안이 된다.
현재 교회 현장에서 사역하는 한국의 목회자 중에 '전집'을 만들어 볼 만한 설교자로, 거의 유일한 설교자가 박영선 목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엮은이인 조주석 국장과의 대담집인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복있는사람, 2011)에서 박영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분명히 제가 커 온 당대 한국교회의 보편적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배운 신앙은 확신과 모범의 길이었으나, 저는 고민하고 생각하는 길로 인도되었습니다. 거부하고 의심하는 것 역시 신앙에서 중요한 과정이며 내용임을 깨닫습니다."
박영선 목사의 설교 사역은 분명 한국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단 설교와는 확연히 다른 깊이와 결을 가졌다. 깊은 사색의 자리에서 움트는 거룩함! 이런 특별한 경험을 가진 이들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설교 속에서 마음껏 회의하고 방황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한때 그가 그 학교의 설교학 교수라는 것만으로, 합동신학대학원에 가고 싶었을 정도였다). 욕심 내어 바라기는, 각기 다른 출판사로 흩어진 그의 저작이 언젠가 전집의 형태로 가지런히 선보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이번엔 '선집'으로 만족하련다. 잘 만들었다. 일부 내용을 원래의 설교집과 비교하여 보았는데, 발췌만 한 것이 아니라(발췌도 세심히 잘했다) 잘 다듬기까지 했다. 이런 책은, 독자로서 참으로 고맙다.
5. 고든 맥도널드의 '불후의 명작'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의 목회자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번에는 리더십에 다분히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대상이 목회자라는 점(그런데 표지만 봐서는 목회 리더십이 아닌 보편적 리더십을 다루는 책처럼 보인다. 출판사 입장에선 마케팅이고, 독자 입장에선 함정이다!), 그리고 칼럼 모음집이라는 점에서 독자 대상과 본문의 밀도는 다소 아쉽다. 또한 교회 성장을 다루는 부분도 개인적으로 불만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들이 좋다. 나는 사실 리더십을 다루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좋다. 거의 비슷한, 원론에 가까운 격려와 조언이라 할지라도 누가 하냐에 따라 '선생'이 되기도 하고, '꼰대'가 되기도 한다. 그는 속깊은 사람이되 지극히 솔직한 사람이다. 그의 사려 깊음은, 아마 그 내면의 깊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 솔직함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조언들로 이어진다. 어떤 부분은 목회자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리더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좋아하는' 목회자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생각보다 그런 책은 많지 않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될 영혼을 형성시키는 작업은 그리스도인 리더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는 부록도 아니고, 선택 사항도 아니고, 3순위에 있는 일도 아니다. 이러한 핵심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 리더십의 자리에 있지는 못하거나, 그가 이룬 업적도 하나님의 영광이나 하나님의 뜻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25-26면)
"나는 인생의 암울한 순간들을 모두 연결시켜 보면서, 이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내게 주실 메시지가 있었음을 본다. 이제서야 나는 순례자가 강을 건넜을 때 했던 말을 할 수 있다. '나는 바닥을 쳤지만, 그것이 타당합니다.'"(3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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