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포스팅
삶의 도구(신미식 지음|프리스마|2012)
20세기형 인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 열어라_이슈북02(강만길, 손석춘 지음|알마|2012)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는가(매튜 스튜어트 지음|석기용 옮김|교양인|2011)
배제의 시대 포용의 은혜(스캇 맥나이트 지음|박세혁 옮김|아바서원|2013)
단단한 진리(필립 얀시 지음|최종훈 옮김|포이에마|2012)
1. 삶의 도구 신미식의 사진집이다. 서문을 쓴 임종진은 이 책을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바로 우리의 근원에 대한 신미식의, 신미식이 전하는 사모곡(思母曲)"이라고 썼다. 신미식은 이 책에서 좀처럼 사람 혹은 풍경, 심지어 사물 전체를 담지 않는다. 전체가 아닌 한 부분, 한 부분을 주목하여 정성을 다해 몰입한다. 마치 조각을 맞추듯, 장면 하나하나는 무언가를 향해 서서히 다가선다. 지극한 몰입 끝에 기어이 눈시울은 애달픈 그리움을 맺는다. 설날, 집을 떠나기 전 사진기도 챙긴다. 그이 만큼 지독한 사진은 남기지 못해도 괜찮으니, 그 허락된 시간이 다하기 전에 그리움을 용기 내어 담고싶다. 신미식의 말처럼 '사진을 담는다는 것은 마음을 담는 것'이기에.
"질퍽하게 파인 주름살과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펼쳐놓고는 결국, 신미식은 말하려 한다. 이미 떠나셨지만 떠나보낼 수 없는 보모님에 대한 애달픈 통곡이자 가슴 밑바닥에 옹골지게 서려 있던 그리움이요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인 것임을."(10면)
2. 20세기형 인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 열어라(이슈북02) 강만길과 손석춘의 대화. 인터뷰이는 강만길이고, 인터뷰어는 손석춘이다. 짧은 대화록이지만 그 무게는 가볍지 않다. 시인 고은은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을 '두 세기에 걸친 나침반'이라고 극찬했다. 왜곡된 이 나라의 현대사에 그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지 모른다(<20세기 우리 역사>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은 마치, 언젠가 읽었던 그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의 압축된 결론을 읽는 느낌이다. 대화 내내 강만길은 화가 나 있는 것만 같다. 무엇이 그를 분노하게 하는지, 대화록을 따라가며 그 분노의 자리에 놓인 나의 무지를 불현듯 발견한다. 부끄러워 낯이 달아오른다. 한편,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여러 비화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래 인용구가 적지 않지만, 고작 93면짜리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이다.
"우리 것이 되고, 우리 것이면서도 내 것이 되는 그런 체제, 어떤 생산물이 내 것이 되면서도 우리 것이 되고, 우리 것이 되면서도 내 것이 되는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야 21세기 이후의 인간 세상이 평화롭고 편안한 세상이 될 겁니다.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공상'이라고 하겠죠. 하지만 앞서가는 생각이 '공상'이라는 말을 듣지 않은 적이 있었나요?"(19면)
"역사학과 경제학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경제학이 수치 중심의 학문이라면, 역사는 가치 중심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5면)
"(김구는)우익 중의 우익입니다. 그 김구도 분단 정부를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1948년 남북협상을 하러 평양에 갔습니다. 설령 분단이 되었다 하더라도 남쪽이 이승만 정부가 아니고 김구 정부가 섰더라면 아마 6.25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이 없으니까요. 임시정부의 정통성은 김구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32면)
"외교사학자들은 한반도가 대륙세력권에 들어가게 되면 일본을 겨눌 칼이 되고, 해양세력권에 들어가게 되면 대륙을 침략하는 다리가 된다고 합니다."(34면)
"현대 사회에 있어서 경제적 민주주의가 없으면 사회적 민주주의가 안 됩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된다고요. 그래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 사회적 민주주의가 같이 가야 합니다."(42면)
"김대중 씨는 대통령 되기 전부터 만났어요. 생각보다 상당히 의지가 굳은 사람이고 머리가 샤프해요. 그러면서도 눈물이 있어요."(58면)
"역사는 직선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그재그도 있을 수 있고, 어떨 때는 꽉 막힐 수도 있어. 역사가 직선으로만 갔으면 인간의 역사가 여기 있겠어요. 훨씬 더 갔지. 지그재그도 있는데 다만 지그재그에 대해서 왼쪽으로 갔던 곡선이 오른쪽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각이 넓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역사가 앞으로 나가죠. 극좌가 되고 극우가 되면 역사가 발전하지 못합니다. 멈춰버립니다. 각을 넓혀야 합니다."(73면)
"현실을 파괴함으로써 자기가 들어갈 구멍을 만드는 의욕을 가져야 해요. 그래야 젊은이들이지."(91면)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 '정치는 역사의 진행형'이라고 단언한 선생은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라고 참 쉽게 풀어주었다."(93면)
3.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는가 스피노자의 길과 라이프니츠의 길이 있다. 당대에 이단아로 정죄받았으나 결국 철학의 본령을 차지한 스피노자와 철학마저 정치적 처세의 수단으로 삼아 승승장구했으나 결국 그 무엇도 되지못한 라이프니츠. 이 책은 작가적 상상력으로 재탄생한 그들의 평전이다. 내가 유럽의 영화감독이었다면, 이 책을 원작 삼아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흥미진진한 한편의 드라마이면서도 철학적, 역사적 통찰이 가득한 책이다. 출간된 직후 사서 읽었는데, '반값'이란다. 억울하고도 반가운 마음에 메모를 남겨둔다.
"실제로 17세기의 위대한 그 두 명의 철학자들은 아직도 극복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며, 아마도 그들은 근대적인 사유를 탄생시킨 쌍둥이 창시자들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스피노자와 그의 철학 속에 기록된 모든 것들에 대한 반응으로 정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반응 가운데 홀란트에서 돌아온 후에 라이프니츠가 오랜 세월 발전시킨 철학보다 더 강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오늘날에도, 헤이그에서 만났던 그 두 사람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그리고 암묵적으로는 이미 선택하고 있는 두 개의 선택지를 각기 대표하고 있다."(프롤로그, 21면)
4. 배제의 시대 포용의 은혜 이 책은 복음의 통전성에 대한 집요한 해명이다. 복음은 세상-공동체-개인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획을 실현시킨다. 스캇 맥나이트는 역사적 예수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면서도 뛰어난 작가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우리나라엔 그의 책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는데 주목할 만한 학자다(IVP에서 번역된 <금식>을 추천한다). 이 책의 가치는 다음주에 짧은 리뷰를 써서 한 매체에 기고할 예정이므로, 제목과 표지에 대한 사소한 불만은 언젠가 적은 적이 있으므로, 여기선 이 정도만 하자.
"종말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의 완벽한 결말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기 위해 종말을 알아야 한다."(83면)
"복음은 삼위일체적이며 상호 위격적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며, 이 하나님의 본질이 곧 공동체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에이콘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관계를 맺도록 지음 받았다.(91면)
"배제는 너무나도 교묘해서 미로슬라브 볼프가 정의한 것처럼, '모든 곳에 침투해 있는 소소한 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다시 말해 배제는 하찮은 죄로부터 구조적인 악에 이르기까지, 작은 거짓말에서 조국을 배반하는 행위까지, 가난한 이들에게 작은 것을 나눠 주기를 거부하는 개인의 모습부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음식을 빼앗아 소수 특권층을 위한 대저택으로 바꾸어 놓는 독재자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171면)
"모든 비극에 대한 희망은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희극이다."(178면)
"너무나 자주, 정말이지 너무나도 자주 교회는 무의식적으로 누가 내부자이고 누가 외부자인지를 나눈다. 그러나 포용의 은혜를 구현하는 참된 신앙 공동체는, 복음이 말 그대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202면)
"세상에서 시작해 공동체와 개인으로 나아가는 것은 개인주의적이라기보다 에이콘적인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에이콘인 인간에서 시작해 복음의 의도를 그 인간을 회복하는 것으로 본다면, 통전적인 관점에서 복음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획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204면)
5. 단단한 진리 필립 얀시의 책이 출판사를 바꿔가며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는데, 우선 반갑다. 그의 몇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였으나, 그것으론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 얀시는 아직 충분히 주목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식하게 나눠 '저자'와 '작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무식한 구분법에 의하면, 나에게 필립 얀시, 프레드릭 뷰크너, 유진 피터슨 등은 작가이다. 그렇다고 저자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콘텐츠로 승부하는 저자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뛰어난 서사와 문체로 전하는 작가도 있어야 한다. 대중은 작가에게 환호한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기독 출판계엔 작가가 거의 없거나 드물다. 아무튼.)
이 책은, 그의 에세이 13편이 실린 글모음집이다. '필립 얀시 입문서'로 제격이다. 저널리스트로서 수준 높은 그의 에세이를 만날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책에서도 그의 유려한 글솜씨를 경험할 수 있지만, 그의 글쓰기는 서사적 구조에서 더욱 그 가치를 발한다는 면에서 이 책은 충분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얀시의 책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글맛이다. 또한 일부 에세이는 그 시의성이나 적합성 면에서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맥락을 가진다(특히 9장 "복음주의자란 누구인가?").
무엇보다 최종훈의 번역이다. 출판사들은, 최종훈 번역에는 반드시 "번역 후기"를 포함하길 바란다. 그는 믿을 만한 번역가이면서도, 뛰어난 글쟁이다. <기도_하나님께 가는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길>에서처럼, 이 책에서도 최종훈의 번역 후기는 그 자체로 반짝반짝거린다. 최종훈의 글을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자.
"이 책 역시 철저하게 '얀시 공식'을 따른다. 고통, 윤리, 도덕, 오늘날의 첨단 과학, 복음주의, 구호 활동, 예술 따위의 거대하고 사변적인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일관된 논리를 지켜간다. 하나님이 애초에 그리셨던 밑그림을 더듬어보고 거기에 오늘의 현실을 비교하며 어떻게 그 간극을 좁혀갈지 이야기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잔뜩 불신만 키워놓고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독자들을 이끌고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 신학자들의 해석을 두루 섭렵한다. 동서양을 오가고 시대를 종횡무진 뛰어넘는다. 유대인 랍비의 해석과 소설가 프레드릭 뷰크너의 접근을 나란히 비교하고, C. S. 루이스의 회의와 도로시 세이어즈의 판단을 대조하며, 바흐와 멘델스존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역자로서는 곤란한 노릇이다."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지만 얀시의 손가락은 현실에 매몰된 현대인이나 교리의 한계에 갇힌 크리스천을 비난하는 데 사용되는 법이 없다. 같은 처지에서 동일한 고민을 품고 살았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은 뒤에도 여전히 불투명한 결론을 붙들고 씨름하는 동료 인간의 입장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어렴풋이 보이는 목적지 방향을 가리켜 보이는 데 쓰일 따름이다."
'view_ > 독서노트_'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 노트 008(2013/03/11),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에서 「기독교적 숙고」까지_ (0) | 2013.03.11 |
---|---|
독서 노트 007(2013/02/25), 「문학은 자유다」에서 「소설과 소설가」까지_ (1) | 2013.02.25 |
독서 노트 006(2013/02/18), 「고통」에서 「모든 것이 은혜다」까지_ (0) | 2013.02.18 |
독서 노트 004(2013/02/02), 「삶은 홀수다」에서 「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까지_ (0) | 2013.02.02 |
독서 노트 003(2013/01/26), 「위로하는 정신」에서 「복음과상황」까지_ (0) | 2013.01.26 |
독서 노트 002(2013/01/19),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에서 「다카페 일기3」까지_ (0) | 2013.01.19 |
독서 노트 001(2013/01/13), 「단단한 공부」에서 「불멸의 지휘자」까지_ (0) | 2013.01.13 |